[서울교육방송 박근영 칼럼니스트]=닥터스트레인지가 너무 핫하다길래 꾸역꾸역 시간을 내서 조조로 봤다. 아침에 보기엔 너무 심오하고 화려한 내용인지라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 컴버배치의 사부 틸다 스윈튼이 이런 말을 한다. 생각하는대로 몸이 반응하는, 병마저 고치는 네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고.
네가 모르는 세계. 저 너머 세계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리 깊은 생각을 하는 철학적 유형의 사람은 아닌지라 가까이서 찾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면 그건 바로 당신.
좋은 습관인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유심히 관찰하고 이사람은 어떤 배경에서 어떤 가치관을 갖고 이런 말을 할까.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전후 좌우 꼼꼼히 살피며 그 사람만의 맥락을 이해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무슨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낯섦에 대한 자동반사적 대응 정도가 되겠다.
어쨌든 그런 관찰의 과정 이후엔 크게 ‘같음’, 과 ‘다름’ 두가지로 관찰 사항을 분류하여 이 사람이 나와 어울리기 쉬운 사람인지 아닌지 가늠해 보곤 하는데 대게 ‘같음’이 많을수록 쉽게 친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분류가 끝이 없음을 여러 사람을 통해 배웠고 천하의 알파고도 수천, 수만번 오류를 낼 수 있는 것이 이 심오하고도 상당히 섬세한 관찰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의 세계는 하루 24시간 또는 1년 365일, 아니 영겁의 시간을 들여도 탐험을 끝마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나의 세계 너머의 세계이기에.
세련되고 공감가는 생각으로 인기 수필이 된 책의 제목도 ‘너의 세계를 스칠 때’ 이지 않은가. ‘너의 세계에서’, ‘너와 나의 세계’ 같은 보다 로맨틱하고 끈적끈적한 제목도 있는데 ‘스친다’라니. 얼마나 산뜻하고 맞는 말인가. 우리는 상대의 세계에 갈 수도 같은 세계에 살 수도 없이 그저 스칠 뿐이다.
나는 고마워서 고맙다 했는데 그는 어쩐 일인지 비꼬는 건 아닌가 고깝게 생각할 수도 있고, 나는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한다 추호의 의심도 없었는데 그는 나의 일방적인 통보에 깊은 실망을 할지도 모른다.
갑자기 세계타령인가 싶지만 요즘 ‘사람을 만나는 일’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내 세계가 그리 크지 않고 아주 작은 마을 정도 되는 나이에는 다른 사람의 세계에 놀러 가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내 세계에서 몇 걸음만 떼면 금방 상대에게 스며들어 쉬이 공감하고 이해하고 편안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점점 땅을 넓혀 나가고 그 안에 나름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많은 것들을 가꾸다 보니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또 높은 담을 쌓게 되었다. 오만과 자만과 외로움이 쌓여갔다. 상대도 나만큼 큰 지켜야 할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혼술, 혼밥이 유행이란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싫어하는 그러면서도 한켠 너무 이해가 가는 이 현상이 어쩌면 우리 각각의 세계를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공유할 수 없다면 혼자 예쁘게 멋지게 가꾸고 싶다는 그런 마음.
그래도, 왠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쌀쌀한 가을 날엔 나의 세계에 온기를 갖고 들어올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앞에 놓인 커피 한잔과 함께 식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