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면 큰일을 이룬다.(와신상담臥薪嘗膽)
임영서의 역사에서 배우는 경영 이야기
[서울교육방송 임영서 창업교육위원장]=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오뚝이처럼 일어나 새로운 시대를 펼친 인물이 있다. 기원전 497년 경, 월나라와 오나라는 접경국가로서 오랜 시간 전쟁을 하면서, 원수 국가가 되었다. 월나라 국왕 윤상이 죽고 구천이 즉위했다. 이때 오나라의 합려는 월나라의 정권교체를 틈타 월나라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오나라는 월나라에게 크게 패하고 만다. 이 전투에서 오나라 왕 합려는 중상을 입은 데다 화병까지 겹쳐서 결국 죽게 된다. 오나라 합려왕은 죽기 전 아들 부차에게 마지막 유언을 한다.
“부차야! 이 아비 대신해서 네가 반드시 월나라에게 원수를 갚아야 한다.”
오나라의 부차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 합려를 죽인 월나라 구천에게 복수심을 갖는다. 그리고는 부지런히 월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한다. 오나라 합려왕이 죽고 3년 후. 월나라의 구천은 당시 최고의 대신이자 전략가였던 범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나라 정벌에 나선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한 부차에게 패하고 만다. 결국 구천은 오나라의 신하가 되어 오나라 합려왕의 묘지기를 하게 된다. 구천은 오나라 부차에게서 탈출하기 위해서 부차의 인분(똥)을 먹는 치욕까지 감당한다. 구천은 부차의 안심을 얻어 월나라로 돌아온 후 자신이 편안한 삶에 젖어 복수심을 잃을까 걱정이 되어 일부러 고달픈 생활을 한다.
구천은 음식에 고기를 넣지 못하게 하고, 집에서 직접 막일을 하는 것뿐 아니라 장작과 건초 더미 위에서 잠을 잤다. 또한 돼지 쓸개를 문틀에 실로 묶어 달아 놓고는 문을 통과할 때면 쓴맛을 느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와신상담(臥薪嘗膽)으로 온갖 고난을 참으면서 훗날을 도모할 때 쓰는 말이다.
이후 구천은 오나라의 부차가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국력을 키우면서 때를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오만해진 오나라의 부차는 당시 충신이며 지략가였던 오자서의 충언을 듣지 않고 월나라를 공격하게 된다. 그리고 이미 정해진 수순처럼 오나라의 부차는 월나라의 구천에게 처절하게 패하고 자살을 하게 된다.
위대한 창업자는 현실의 고난과 역경을 인내로 견디면서 훗날을 도모한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큰일을 해낼 수 있을까?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고난이라는 것은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사람을 성장시키는 양약임에 틀림없다. 25살에 대학을 마치고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에서 나는 학비와 생활비는 물론 한국의 아버지에게 돈을 보내드려야 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가 아닌 장사를 선택했다. 무슨 장사를 하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일주일간 동경 시내를 걸어서 몇 번을 돌았다.
그러던 중 발견한 아이템이 노점 꽃 장사였다. 꽃 장사를 결심한 나에게 현실적인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첫째, 꽃을 포장하는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동경 신주쿠의 한 꽃집에서 꽃 포장기술을 배우기로 했다. 낮에는 학교에 가고 오후부터 밤 10시까지 유리 공장에서 완성된 유리 제품을 창고로 옮기는 일을 했다. 이후 꽃가게로 가서 저녁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꽃 포장 기술을 배웠다. 너무도 고달픈 시간이었다.
두 번째, 문제는 자금이었다. 비자없이 불법으로 야쿠르트를 팔러 다닌 제주도에서 온 누님이 있었다. 그 누님은 경찰에게 걸리면 한국으로 다시 추방될 위험을 안고 있었다. 나는 “누님! 나에게 25만 엔을 빌려주면 꽃 포장 기술을 가르쳐주고는 꽃장사를 할 수 있는 장소도 마련해주겠다”라고 제안했다. 결국 승낙을 받아냈고 나는 받은 25만엔으로 자동차와 꽃재료 원.부자재를 구입했다.
마지막 세번째 문제는 어디에서 장사를 할 것인가였다. 나는 동경 신주구에서 가장 번화한 가부끼죠의 풍림회관 앞으로 결정했다. 누님은 그곳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장사를 하기로 했다. 첫 번째 날부터 장사는 예상밖으로 대박이었다. 집에 돌아와 자려고 해도 앞으로 돈 벌 생각을 하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말을 몰랐던 나에게 야쿠자들이 찾아왔다. 말이 통하지 않은 내가 답답했던지 그들은 나의 꽃과 화분 등을 던지고 모조리 깨버렸다. 나는 말로만 듣던 야쿠자들에게 氣(기)에 눌려 대항할 용기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서 꽃과 화분 등을 구입해서 다음날 또 장사를 하기 위해 나갔다. 야쿠자가 두려웠지만 난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꽃 장사를 멈출 수는 없었다.
다음 날 꽃 장사 준비를 다시 해서 나갔다. 또다시 야쿠자가 와서 때려 부쉈다. 이제는 나도 화가 났다. 하지만 야쿠자는 영화나 책을 통해 무서운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섣불리 맞설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포기 할까? 와 그래도 해야 해!”두 가지 생각이 번갈아서 나를 어지럽게 했다.
세 번째 날 장사를 나가니 또 다시 야쿠자 패거리가 왔고 그들은 꽃과 화분을 부수고는 성이 안 풀렸는지 이번에는 쇠몽둥이로 차를 부셨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합기도와 태권도, 권투를 한 나에게 20여명의 야쿠자들이 추풍낙엽이 되어 길가에 쓰러졌다. 생각보다 쉽게 야쿠자를 제압한 나는 이제 그들의 보복을 걱정해야 했다.
며칠 만에 난 다시 그 장소에 나갔다. 꽃을 포장하고 있는데 육감적으로 뭔가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는데 갑자기 쇠뭉둥이가 내 턱을 가격했다. 난 곧바로 기절했고 주변 한국 식당으로 옮겨져 3시간 만에 깨어났다. 하지만 난 기억력을 잃었다. 내 이름도 생각나지 않았고, 그날이 며칠, 무슨 요일인지도 기억이 없었다. 더욱이 아버지 이름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슬프고 다시 정신 차려서 장사를 하고 성공을 해야 한다는 간절함만이 있었다.
몸을 추수린 나는 다시 같은 장소로 꽃 장사를 나갔다. 이번에는 또 다시 싸울 수 없어 일본어학교에서 선배에게 통역을 부탁하고 함께 나갔다.
그리고 선배의 통역을 통해서 “난 여기서 장사를 못하면 유학생활을 할 수도 없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더 이상 가난이 싫어 자살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나를 죽이든. 아니면 이곳에서 장사를 하게 허락하라”고 반 협박 반 설득을 했다. 결국 난 그 곳에서 월 3만엔을 야쿠자조직에 상납을 하기로 하고 장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장사는 目(목)이었다. 자리가 좋아서 연일 대박이었다. 더 이상 생활비걱정! 학비 걱정! 없었다. 나의 간절함은 큰 역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보다 더 간절하게 성공한 인물이 있다. 죽이야기 10호점 대학로점이다. 내가 죽이야기 대학로점 이**점주를 만난 것은 2003년 초겨울 어느 날이었다. 사업에 실패했던 나는 그 해 여름부터 죽이야기 프랜차이즈 사업을 통해 재기를 노리고 있었다. 이**점주의 아들은 20살 청년인데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을 잃었다. 남편의 카센터는 아들의 치료비로 쓰일 절박한 상황이었다.
실의에 빠져 있는 그녀는 병원비와 아들의 앞길을 위해서 창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때가 ‘죽이야기’ 초창기였는데 경쟁사는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우리는 근근이 9호점까지 오픈했을 뿐 소위 말하는 대박 가맹점은 없는 상황이었다.
“사모님! 모험 한번 해보시겠어요? 사모님도 뭔가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고 나도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박 가맹점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만약 내게 모험을 걸면 사모님 가게를 대박 가게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얘기를 듣고서 그녀는 한번 해 보자며 내 손을 잡았다.
당장 다음날 그녀는 갖고 있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가게를 찾아 나섰다. 정말 열심히 발품을 팔았지만 그런 가게를 찾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중
‘경쟁사를 넘어서려면 그 회사의 본점 옆으로 가자.’
당시 경쟁사는 대학로에 넓고 세련된 본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루 매출을 알 수 없을 만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2층은 매장이고 3층은 사무실이었는데 장사가 잘 되니까 너도나도 몰려들어 가맹점 계약을 맺었다.
나는 날마다 그곳에 가서 경쟁사를 바라보며 간절히 소망했다.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과 같은 죽 브랜드를 만들자」
간절함은 기회를 가져왔다. 경쟁사 바로 옆에 있는 조그만 가게를 임차할 수 있게 됐다.
“할머니, 이 가게 제가 계약할게요! 다른 사람한테 팔지 말고 며칠만 기다려 주세요. 꼭이요!” 점포를 내놓은 할머니에게 나는 이렇게 얘기했다.
권리금 2,500만 원에 보증금 2,000만 원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가게였다. 나는 바로 이**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자기 수중에 2,500만 원밖에 없는데 어떻게 4,500만 원짜리 가게를 얻느냐고 걱정했다. 나는 일단 권리금만 계약해 놓고 함께 다시 방도를 찾자고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바로 계약을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보증금 2천만원과 시설. 설비비 3천 만원 등 부족한 5천만원을 구하는 일이었다. 보증금을 구하지 못하면 권리금을 떼일 수밖에 없기에 그녀도 나도 정말 절박했다.
어느 날 이** 씨는 길거리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났다. 바로 고등학교 때 은사를 만난 것. 그분은 이**씨의 학창시절 선생님이었다. 제자의 사정을 들은 그분은 내가 너무 무모하다 싶었는지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
사무실로 찾아 오신 이** 씨의 은사님은 나에 대한 신뢰를 파악하고 이**씨에게 5천만원을 빌려주시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대학로에 죽이야기 10호점을 오픈할 수 있었다. 9평이니 바로 옆에 있는 경쟁사의 본점 매장의 1/4에 불과한 크기였다. 자신감을 갖고 매장을 오픈했지만 며칠째 하루 매상이 10만 원에 불과했다. 그렇게 해서는 월세도 못 낼 판이었다. 나는 ‘이 골리앗을 이기지 못하면 죽 사업을 포기해야겠다’는 각오로 경쟁사 옆에 매장을 오픈한 것이었는데 며칠째 죽을 쑤고 있으니 얼마나 낙심이 되던지….
‘아, 내가 죽 사업을 그만둬야 하는 건가? 너무 무모한 짓을 한 건가?’
‘이**점주에게는 어떻게 돈을 물어줘야 하나? 내가 저 가게를 인수해 호떡 장사나 떡볶이 장사라도 해야 하나? 족발, 순대라도 배달하면서 갚아야 할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그렇게 포기할 수는 없다는 오기 같은 게 올라왔다. 어떻게든 죽이야기를 알리려고 갖은 방법을 써 봤다. 하지만 옆에 워낙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보니 대안이 없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어느 날 저녁에 죽이야기 대학로점 사장한테 전화가 왔다.
“사장님, 오늘은 25만 원 팔았어요!”
수화기 너머로 이 사장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요? 이제 됐어요! 우리 조그만 더 힘을 내 봅시다.”
매상이 10만 원에서 25만 원으로 오른 것은 분명 희망의 빛이었다. 더구나 그 가게는 월세가 쌌기 때문에 하루에 40만 원만 팔면 적자를 면할 수 있었다.
이 사장은 지금까지 오픈한 500여 죽이야기 매장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 당신의 사정이 너무 절박해서인지 손님을 왕으로 모셨다. 손님이 없다고 해서 의자에 앉아 있는 법이 없었다. 항상 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누가 지나가면 바로 문을 열고 쫓아 나와 “더우신데 음료수라도 한 잔 드시고 가라”며 손님 하나라도 더 잡으려고 애썼다. 손님이 오면 왕도 그런 왕이 없을 정도로 지극 정성으로 접대했다. 어떻게든 거기서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을 정말 귀하게 맞이했다. 이**점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말 완벽한 서비스정신이 흘렀다.
요즘 경기가 나쁘다고 점포 입지가 나쁘다고 한탄하며 쉽게 실의에 빠져있는 분들과는 사뭇 대조가 되는 분이었다. 손님 없다고 스마트 폰과 텔레비전에서 눈을 못 떼는 분들과는 분명히 다른 성공 요소가 있다. 이 사장 본인이 성공에 대해 절실했기에 10만 원짜리 매출의 점포를 25만 원 50만 원, 70만 원, 90만 원으로 오르더니 결국 두세 달 만에 100만 원을 넘어섰다. 옆에 있던 죽 전문점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경쟁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아, 됐다! 절심함이 드디어 골리앗을 이기게 됐구나!’
뿐만 아니라 그때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죽이야기는 당시 돈이 없어 가맹점 모집 광고를 할 수 없었는데, 경쟁사에 가맹하러 왔다가 대학로점이 잘 되는 것을 보고 하나둘 우리 쪽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일로 우리는 100호점까지 탄력을 받고 올라갈 수 있었다.
오늘날 죽이야기가 여기까지 성장하는 데는 죽이야기 대학로점의 이**점주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이**점주를 생각하면 감사하고 마음이 뭉쿨해진다.
지금 사업으로 나서고 있는 창업자와 창업을 하고 점포 매출 부진으로 고민하고 있는 분들은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은 성공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성공에 대해 얼마나 간절하고 절실함을 갖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라. 그렇다면 나태함은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