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9년 프랑스 제1호 쇼콜라티에인 다비드 샤이유(David Chaillou)가 초콜릿으로 만든 비스킷과 케이크를 선보였다.
/ 초코홀릭(돔 램지) 20p 발췌
조선후기 시대에 유럽은 신대륙을 발견하고, 커피와 초콜릿이 스페인을 통해 경쟁적으로 퍼졌다. 초코홀릭이란 책을 읽어보면 그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7월 2일, ‘다비드 샤이유’라는 인물을 통해 김성미 회장이 연결돼, 생각났다. 두 인물의 공통점은 ‘제 1호’이다.
‘제 1호’는 최초로 그 분야의 문을 열었다는 의미와 최고의 명성을 유지한다는 의미가 중첩된다. 김성미 한국쇼콜라티에협회 회장이 한국의 최초 쇼콜라티에(제 1호)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갤러리아 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을 통해서 최초 쇼콜라티에 작품전을 가졌던 것은 훗날 한국 초콜릿 역사를 거론할 때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보다 내 마음을 끄는 것은 ‘지금의 김성미 회장’의 삶이다. 제 1호의 명성이 지금까지 유지된다는 그 비결은 ‘철저한 자기관리’에 있다. 돔 램지는 코코아콩의 3대 요소로 ‘품질, 향미, 지속가능성’으로 꼽고 있다. 특히 3번째 기준인 ‘지속가능성’은 카카오콩만의 기준은 아닐 것이다. 초콜릿 예술과 문화를 담당하는 쇼콜라티에의 자기관리는 요리사의 맛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듯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쇼콜라티에 제1호 김성미 회장이 지금도 제1호 쇼콜라티에가 된다는 것은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배움의 혁신’에 있다.
김성미 회장이 창업프렌차이즈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배움의 혁신”을 거론하면서, 일본유학시절에 만났던 그 초콜릿을 한국에 돌아와 찾을 수 없어서, 영국에서 수제 초콜릿을 직접 배워 한국에 들여왔을 때, 그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초콜릿은 다양한 재료들과 배합, 다양한 인물들과 변화, 다양한 생각들과 인문학적 융합, 다양한 직업들과 뒤섞임의 과정이 존재했다.
“가나슈”에 대해 김성미 회장이 당시 언론사 인터뷰에서 거론했다. 김성미 회장의 얼굴에서 열정의 표정이 초콜릿 온도처럼 뜨거워짐을 직감했다. 프랑스어로 “얼간이, 바보, 멍청이”인 ‘가나슈’가 초콜릿 제품 이름이다. 들어가지 말아야할 것이 들어갔을 때, ‘바보짓’이 되었던 그 실수가 창조적 초콜릿 제품이 된 것이다. 그것이 가나슈 1호였던 것이다. 지금은 당연한 가나슈도 최초로 탄생했을 땐 ‘바보’로 평가받았듯, 지금 바보짓처럼 보여지는 다양한 시도들이 훗날 ‘제 1호’가 될 것은 누구도 모를 일이다.
7월 첫 번째 일요일, 집에서 쉬다가 초콜릿 전문도서 ‘초코홀릭’을 읽으면서 ‘프랑스 제1호 쇼콜라티에인 다비드 샤이유(David Chaillou)’을 보다가, 한국 제1호 쇼콜라티에 김성미 회장이 떠오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