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콜릿 템퍼링(tempering)이 좋다. 어느날, 어떤 쇼콜라티에의 나비같은 템퍼링 솜씨를 보고나서, 초콜릿이 더 달콤해졌다. 그때 그 몸짓은 ‘나의 초콜릿’ 이미지가 되었다. 템퍼링은 도대체 무엇인가?
네이버 백과사전을 검색보니, “초콜릿의 온도를 맞추는 것”으로 정의된다. 고체였던 초콜릿이 열을 받으면 액체가 되고, 대리석위에서 휘젖으면 서서히 식는다. 적정 온도에서 몰드에 초콜릿을 부으면, 작은 초콜릿이 탄생한다. 템퍼링은 초콜릿을 온도로 적절하게 다루는 것이며, 온도를 높였다가 낮춰서 식히는 모든 과정이다. 물론, 고체 덩어리 초콜릿을 깍두기처럼 썰 수도 있겠지만, 그런 모양이면 누가 초콜릿에서 달콤함을 상상할 수 있을까?
달콤한 초콜릿은 ‘맛’보다 ‘멋’에서 생긴 것이다. 초콜릿의 어원은 ‘쓴 물’이라고 한다. 씀바귀처럼 쓴 초콜릿이 달콤함을 상징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모양과 형상이 달콤하게 조각된 측면도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고체 덩어리 초콜릿의 상황을 자주 만난다. 낯선 모든 사람은 고체상태다. 딱딱함은 어떻게 유하게 변할까? 초콜릿 템퍼링 과정을 살펴보면, 온도가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작은 관심의 표현은 얼음처럼 차가운 관계를 녹인다. 봄이 되면 대지에 꽃이 피고 얼음이 녹듯이 모든 사람의 낯선 관계는 따뜻한 열기로 느슨해진다. 무장해제는 온도의 특기다.
나는 언론인으로, 항상 명함을 준비한다. 상대를 알기 위해 나는 나의 기본 정보를 제공한다. 낯선 관계에 다리를 형성하는 첫 걸음은 명함전달에 있다. 명함전달은 맨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것이고, 날마다 알고 지내는 지인과 관계에서도 그날 처음 만났다면, 대화는 봄날의 날씨로 시작하는 것이다. 템퍼링 과정과 거의 흡사하다.
온도를 올려서 초콜릿의 상태가 어떤지, 그 민감함을 입술로 느끼듯, 사람은 상대의 마음상태가 어떤지 수시로 관찰하고 느끼면서 대화를 해야한다. 혼자서 말하는 것은 초콜릿을 그냥 혼자서 휘젖는 것과 같다. 템퍼링은 쇼콜라티에가 초콜릿의 눈치를 보는 과정이다. 초콜릿이 어떤지 살피듯, 화자는 청자의 상태를 관찰하면서 대화를 해야한다. 템퍼링은 쇼콜라티에와 초콜릿의 상호작용이듯, 대화는 화자와 청자의 마음 교환 과정이다.
나는 까페에서 기사작성을 종종 한다. 칸막이가 없다보니, 옆에서 아줌마들이 대화하는 소리를 간혹 듣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대화내용보다 대화채널과 대화장면전환이 어느정도 진행되는지 관찰할 때가 있다. 4명정도 모여서 대화할 경우, 대부분 1명이 대화를 주도하고 나머지는 대화주제를 꺼낼 때마다 묵살당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2명끼리 친구대화도 마찬가지다. 대화가 재밌고, 깊이가 있으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템퍼링하듯 관심의 눈치를 가져야한다. 쇼콜라티에가 초콜릿의 온도가 어느정도인지 느끼지 못한다면 몰드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무용지물이듯, 대화과정도 상대가 제대로 듣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혼자만 말한다면 그 대화는 템퍼링이 적절하지 못한 것이다.
방금 어제 못 봤던 ‘군주’ 드라마를 봤다. 대목의 손녀 화군이 진꽃밭을 태워버렸다. 대단하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세자를 죽인 할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할아버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뺏기 위해 진꽃밭을 태웠다는 화군의 절규, “심장”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는데 심장같은 진꽃밭, 나무로 본다면 뿌리가 곧 진꽃밭이고, 심장이다. 열매의 결과를 얻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2m의 높이와 100개의 달콤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땅속으로 2m의 뿌리를 뻗고, 100일의 고독한 시간을 견뎌야한다는 말이 있다. 열매가 맺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고독과 고통의 시간은 ‘단군신화의 곰’이 마늘과 쑥을 먹으며 동굴에서 견딘 그 인내와 같다. 어쩌면, 내가 나를 다스린다는 것, 자신이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 그것도 나와 나의 템퍼링 과정일 것이다. 템퍼링은 뜨거운 온도에서 차가운 온도까지 초콜릿을 다루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열정’이 핵심이다. 열정이 없다면 초콜릿이 녹지 않을 것이니, 나를 뛰게하는 심장은 무엇인가? 폐허가 된 진꽃밭에서 절규하는 대목의 얼굴을 보면서, 나에게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가만히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