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장창훈 교육칼럼]=2018년, 황금개띠로 분류되는 무술년이다. 철저한 방위체제를 뜻하는 ‘무술년’(戊戌年)은 사드(SAAD)를 옹호하는 듯 하다. 싸움의 명견, 사드가 있으니 그래도 중국이 엄살을 부리며, 국제사회를 의식하면서 북한에게 군밤을 때리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인가? 올해, 황금개가 한반도를 지켜주길 기대한다.
서울대 김난도 소비자학과 교수는 황금개띠의 특징으로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김현숙 세종사이버대 국제학과 학과장으로부터 들었다. 보통, 꼬리가 몸통을 흔들었다고 하면, 역전되거나 물구나무의 전도현상이 떠오른다. 아마도 촛불이 대통령을 불태워 바꾼 것도 여기에 해당될 것 같다.
권력은 본래 국민 개인의 것이었다. 권력이 제도화되면서 특정 집단이나 가문에서 독점하면서 귀족주의가 오랫동안 권력을 사유화했고, 그 권력이 국민을 다스리다보니, 개인은 노예의 부품이 되었다. 그 시대가 중세, 근대로 이어졌고, 아직도 그러한 정신적 유물이 남겨져 있다. 그러나, 이제는 상당히 달라졌다. 세포의 시대가 된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혹은 세포의 시대, 이러한 것은 곧 ‘개인의 시대’가 된 것을 말하고, 보편적인 용어로 ‘민주주의’를 뜻한다. 백성이 주인인 시대, 우리는 태어나면서 그러한 권리를 부여받아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왕이 주인이고, 백성은 왕의 땅을 관리하는 노예에 불과했다. 호칭은 ‘백성’일 뿐, 권리측면에서 권력을 나눠주지 않으므로 노예수준이다. 차라리 노동조합의 권력이 조선시대 백성의 권리보다 클 것이다. 지금처럼 집회를 했다가는 조선시대엔 반역죄로 몰살했을 것이니…..
말초신경(末梢神經)을 자극한다는 말이 있다. 끝에 있는 신경을 의미한다. 신경으로 느껴야만 뇌가 느낀다. 세포 하나는 전체 몸에 비하면 1/50조의 아주 작은 크기에 불과하다. 거대한 지구공동체에서 1명은 1/70조에 불과하다. 이렇게 작은 인간이지만, 전체집합이 부분집합을 지배한다는 이론적 틀이 붕괴된 소련의 공산주의 실험모델의 마침표 ‘페레스트로이카’처럼, 전체주의는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
전체주의 같지만, 개인주의로 합산된 전체주의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이론으로 유럽은 니클라스 루만의 기능주의 체계이론을 신봉한다. 루만의 기능주의는 철저하게 ‘개인주의’다. 사회는 사람으로 구성되지 않고, 소통체계로 구성되며, 그러한 소통체계는 각 개인의 의미사회(사람의 의식체계)와 유기적으로 연동하면서 사회가 존속한다는 이론이다. 복잡한 듯 하지만, 쉽게 설명하면 각 개인은 스스로 작은 생각의 사회를 이루고, 개인과 개인이 소통하는 체계는 언어와 문화적 코드로서 새로운 사회체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회를 분리해서 해석한 니클라스 루만의 기능주의는 유럽의 지배원리인데, 아직 한국사회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서 국가를 향한 충성과 복종의 의미로서 개(犬)는 옛날 품종이다. 가족을 위한 희생으로 자식은 가족에 속하고, 부모는 자식을 위해 헌신한다는 그러한 전체주의를 위한 개인의 종속(從屬)은 황금빛 내인생 드라마를 보더라도 얼마나 모순된지 드러난다. 자식은 부모의 부속품도 아니고, 부모는 자식을 낳았으므로 책임의 족쇄를 차는 것도 아니다. 부모는 부모로서, 자식은 자식으로서 살아가면서 서로 연결되어서 가족이 형성되는 것이지, 가족의 집단에 사람이 구속되는 시대는 지났다. 이것이 세포의 시대를 뜻한다.
정치인들은 아직도 ‘촛불’이 타오른다. 그들에게는 전체주의를 향한 맹신(盲信)이 있는 것 같다. 이론적으로 공산주의가 붕괴되었을 뿐, 이념의 공산주의처럼 그들에게는 국민을 볼모삼아서 ‘촛불’로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자신들이 들고 있는 촛불이 바로 정의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국민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만약 여전히 촛불을 내려놓지 않으면서 전체주의로서 이념으로 세상을 규제하고 통제하며 국민에게 강요한다면, 촛불의 시대적 요청은 권력의 무효화이다. 권력에 앉은 용(龍)은 스스로 촛불을 들 수 없음을 인지해야할 것이다. 이것은 국민이 권력이며, 국가이며, 힘의 근원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촛불의 명분은 민노총도, 민주당도, 국민의당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가 없다. 이용해서도 안된다. 국민 모두의 것이므로 그러하다. “총유”(總有)로서 국민의 것임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언어적으로 표현하자면, 2018년은 아마도 ‘단어의 시대’가 아닐까싶다. 책이 아무리 많아도, 책제목은 단어로 구성되고, 단어의 연결구조가 책을 만든다. 교보문고도 결국 미분하면 ‘단어’다. 그렇다고 자음과 모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자음과 모음은 그 자체로서 사용의 의미는 없다. 사람이 사용할 때 최소단위는 ‘단어’다. 단어를 많이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 결국 책도 쓰고, 글도 쓰고, 말도 잘할 것이다.
세포의 시대에 접어든 오늘, 영어단어장 하나 사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