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드라마 칼럼 / 장창훈]=이보영이 연기하는 마더속 강수진, 겉으로 당당하지만 여리고 여린 소녀로서 숙녀 역할이다. 새박사로서 나오지만, 그 의미는 한곳에 머물 수 없는 배회자로서 입양아의 고독을 상징한다. 철새들은 아주 먼 거리를 높게 거리를 잃지 않고 비행한다. 고향을 찾아 떠나는 입양아들은 항상 친모를 향해 그리움이 있다. 나무가 뿌리가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그 부모가 있지만, 고아원에 있거나 버려진 아이들은 부모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다. 마더는 이러한 사람들의 슬픔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복잡하고 난해한 장면, 가령 이보영은 어떤 딸을 유괴하듯이 데리고 나왔는데, 폭행당한 아이다. 그것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드라마를 통해서 밝혀지겠지만, 상당히 복잡하고 난해하다. 유괴하듯 데려온 딸이 이보영의 친엄마, 이발소를 경영하는 친엄마를 할머니로 부른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실제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이보영, 강수진은 어린 시절 자전거 자물쇠에 묶여서 고아원에 버려졌다. 고아원에 버려져서 자신을 키워준 수녀는 할머니가 되어서 병원에 버려지고, 버려짐과 키움의 엇갈림속에서 이보영은 자신의 책임을 생각한 것이다.
“포근한 침대에서 혼자 엉엉 우는 아이를 상상할 수 있나요?”
입양아의 설움이다. 웃지만, 우는 아이, 슬픔의 강물은 쉽게 파도가 멈추지 않는다. 키우는 엄마와 낳아준 엄마의 다름에서 발생하는 영원한 기억의 부재, 이보영은 자신으로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찾지도 않았던 친모를 엉겹결에 만나 버린 것이다. 자전거 자물쇠가 열린 것을 보고 깨달은 것이다. 이발소 그 할머니가 바로 자신의 친모라는 것을,,,,,,, 자신이 겪은 설움, 평생 살아오면서 가졌던 모든 아픔과 괴로움은 컵을 손으로 깨뜨린 장면으로 표출되었다. 상당히 강력한 메시지이고, 실제로 손바닥 부위에 컵이 박혔는데, 그저 수건으로 감싸고서 그곳을 나왔다. 남자친구로 소개받은 남친이 될 확률이 높은 의사남친과 약속장소로……
사실, 대비가 극적이다. 허율이 연기하는 혜나는 윤복으로 개명했다. 혜나의 어머니도 남친이 있었는데, 아주 괴팍하면서 자식을 절대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이곳저곳에 들고양이처럼 떠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욕정을 채우면서 살아가는 양아치다. 자식을 돌볼 수가 없는데, 그래서 자식을 여러명 사고로 위장해서 죽였다. 증거가 없고, 어머니들은 무서워서 그것을 신고도 하지 못하면서 벌벌 떠는 상황인데, 이보영이 만난 의사남친은 포근하면서 사랑을 알고, 사람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방법, 예의를 알고 있다. 윤복이는 처음엔 의사 아저씨가 많이 싫지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서로 이렇게 너무 다른 것이다. 어쩌면 자식을 키우는 것은 부부의 협력이 부단히 필요하다. 어머니가 단독으로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아버지가 폭행을 일삼는다면 그것을 불가능하다. 어쩔 수가 없다.
윤복이 겪었던 자신의 어머니의 남친은 폭행으로 상처를 입혔다면, 이보영이 만난 남친, 즉 새로운 엄마의 남친은 상처를 꿰매주는 사람이다. 이보영은 자신의 상처를 꿰매는 의사에게 말한다. 저는 가죽가방이라고 생각하세요. 가죽가방은 아픔을 모르지만, 아픔이 밀려오니 이보영은 이빨을 꽉 깨문다. 어쩔 수가 없다. 고통은 그렇게, 상처는 그렇게 쉽게 아물지 않는다. 어쩌면 이보영(강수진)이 자신의 친모를 만났을 때, 그동안 있었던 상처가 곪아서 비로소 터진 것일 수도 있다. 상처가 있으면서 그 상처를 애써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걸어다니지만, 심리적 고통은 육중하게 바위같다.
“심리적으로 교통사고를 상한 상태예요.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데, 걸을 수 있다면서 걷는 것과 같죠”
이보영의 상황이 그러했다. 자신은 폭행당하는 아이를 보듬고 자신의 모든 인생을 내던지고서 탈출하려고 결심했느데, 정작 자신이 그 아이와 같은 처지였던 것이다. 어쩌면, 강수진의 친모가 말하지 못한 아픔의 비밀이 반전의 국면을 맞게 할 수도 있다. 너무 갑자기 찾아오는 이보영 친모와 양모의 만남, 끝장면에서 벌써 둘은 만났고, 이보영의 양모가 친모의 뺨을 때렸다. 이해할 수 없는 친모의 자식버림에 대한 댓가였다.
“절대로 안 보겠다고 해도, 구불구불 돌아서 다시 만나는 것이 사람의 관계죠. 그래야 끝이 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