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내 방엔 책상이 2개다. 앉은 책상까지 하면 총 3개다. 모든 쓰임이 각각인데, 책상위는 항상 책들이 수북히 쌓여있다. 무슨 잡초같다. 양말을 아무 곳에나 벗어두는 것처럼 쌓여가는 빨래통은 그 자체로 빨래감이다. 빨래들도 빨기전에 깨끗하게 정리해서 두면 그 자체로 보기에 좋다. 뭐든지 보기에 좋으면 마음도 좋아지는데 습관의 문제인 것 같다. 그릇을 모아두고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 있고, 밥을 먹는 그 순간 일처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성격이 각각이다.
의자에 앉아서 공부하는 책상은 둘인데, 하나는 책들이 널려있고, 다른 하나는 내가 주로 앉아서 노트북을 하는 곳이다. 오늘, 불현 듯 내 책상위가 잡동사니 창고같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치워야겠다는 집념이 책상위의 물건을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사소한 생각들, 사소한 허락이 결국 책상을 이렇게 만들고 만다. 문을 열어준다는 것은 감당해야할 책임이 무거워져서 결국 무너질 수도 있다. 허락은 곧 확인이 필요하다.
왜 저 책은 책상위에 있는가? 그 책은 내게 대답할 명분이 없다. 그저 어느날 내가 꺼내서 읽다가 거기에 방치한 것이다. 왜 저 볼펜은 책상위에 있는가? 그 볼펜은 할 말이 없다. 어느날 내가 쓰다가 거기에 둔 것이다. 모두 자기의 위치가 있는데 나의 부주의와 태만이 책상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책상위가 정리가 안되면 결국 내 생각이 정리가 안되고, 생각이 정리가 안되면 생활이 헐클어진다. 모든 것은 사소함에서 비롯된다. 작은 실수, 작은 약점, 작은 틈, 작은 허용이 자신을 망친다. 인정(人情)은 좋은 말이지만,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것이 좋다는 그 명분으로 좋은 것이 망가지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내 책상이 그러했다. 책들에게, 볼펜에게, 물통에게, 사진기에게, 신문에게, 코드에게, 동전에게, 노트에게, 잉크통에게 자리를 허락하니 결국 책상 본인의 역할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왼쪽 책상에서만 노트북을 하는 이유는 텅 빔 때문이다. 우측 책상은 별의별 것이 차지하고 있으니 갈 수가 없다. 모두 내 불찰(不察)이다.
재건축의 첫 번째 조건은 2/3 동의율과 책임감이다. 집을 가진 토지등소유자들이 재건축을 하겠다고 결의하고 동의서에 사인을 한다면, 일사분란하게 일이 추진된다. 대신 사업비와 재건축분담금은 토지등소유자의 몫이다. 재건축이 시작되고, 관리처분이 승인되면, 모든 건물은 철거된다. 철거된 이후에 공터는 A4와 같다. 그 어떤 건물도 남겨지지 않는 그 순간, 창세기 1장과 같다. 처음 초(初)는 옷 의(衣)와 칼 도(刀)가 합쳐져 있다. 옷을 만드는 처음은 바로 천에 칼을 대는 것이다. 칼로 천을 자르기 전, 원단은 A4와 같다. 인생도 새로운 시작을 하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책상으로 만들어야한다. 생각의 책상, 학문의 책상, 직업의 책상, 업무의 책상 등등 모든 것이 그러하다. 적폐청산(積弊淸算)은 그저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쌓인 쓰레기는 버려야한다. 당연한 것이다. 옛 것을 버려야 새 것을 얻을 수 있다. 트럼프조차 보호무역으로 회귀했다. 1945년부터 70년 넘게 운영된 미국중심 세계공동체가 새롭게 변혁해야할 시점임에 틀림없다. 모두 불안한 기우(杞憂)와 위험의 빨간 신호탄을 예고하지만, 옛 것은 옛 것이다. 맨날 미국이 달러를 과도하게 발행하면 세계 경제는 금융공황에 휩싸였다가 홍역을 앓고, 그러한 반복된 금융공황은 이제 벗어나야할 시점이 아닐까? 북한의 핵문제도 동일하다. 공포탄도 아니고, 모두 죽는 죽음의 전쟁을 그들이 해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중국도 북한을 꼭두각시로 조정하는 옛날 진시황제 방식의 권력갑질을 멈춰야할 것이다. 모두 옛날 방식이다. 모두 재건축을 위해서 철거될 수순을 밟길 기대힌다. 하얀 A4로 남겨져서 새로운 출발의 역사가 씌여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