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의사소통(意思疏通)은 의사(意思)를 소통하는 것이다. 소통(疏通)은 통하는 것이며, 교통(交通)처럼 서로 길로 연결되는 것이다. 집과 집은 길로 연결되고, 나라와 나라는 무역으로 연결되고, 과거와 미래는 책으로 연결되고, 문명과 문명은 예술과 문화로 연결되고, 사람과 사람은 언어로 연결된다. 지식을 안다는 것도 지식과 연결됨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의사(意思)는 무엇인가? 뜻 의(意) 생각 사(思)이다. 모두 心이 있다. 心은 심장을 본뜬 글자로서 심장의 가장 큰 특징 2가지는 생명력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다. 색깔은 붉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숨겨져 있어서 숨결을 불어넣는다. 보이면 그 자체로 죽게 되는 존재, 뿌리와 같다. 뿌리가 보이면 나무는 죽는다. 뿌리는 땅속 밑에서 고요히 자리를 지킨다. 심장의 존재처럼 ‘생각’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자신이 하므로 상대의 생각도 들리거나 느껴진다고 착각할 뿐이다. 생각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상대의 생각에 대해 본인이 상대의 생각을 유추할 뿐이다. 모두 자신의 생각들이다. 의사(意思)는 자신의 마음이며, 생각인 것을 인지해야한다. 모든 출발은 여기서 비롯된다.
심장의 피를 수혈하듯, 생각을 뽑아서 상대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바로 ‘표현’이며, ‘언어’이다. 말과 글이 그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의사소통은 보이지 않는 생각을 전달하는 것으로 ‘글과 말’을 통해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어가 없었다면, 과연 인류가 지금의 문명을 이룰 수 있었을까? 먹고 사는 것에 급급하더라도,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들이 도구를 활용해 생존과 함께 벽화를 남기면서 사상을 구축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이다. 사유의 능력, 그것은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의 간절함이다.
영어로 의사소통은 모두가 알 듯이 컴뮤니케이션이다. 어원은 com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나눔과 함께”이다. 함께 나누는 것이 컴뮤니케이션이다. 의사소통은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통지가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의사소통에서 ‘소통’은 서로 통하는 것이지 절대로 일방통행도 아니다. 서로의 의사를 주고받는 것은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A가 A의 의사를 전달할 경우, 그 의사가 과연 B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B가 A의 의사를 전달받고 반응하는 것이 다시 A에게 돌아올 때 새로운 정보가 A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것인지, 이러한 과정은 상호교환의 관계로 형성된다. 그저 편의점에서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가져오는 개념으로 의사소통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의사소통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가장 먼저 의사소통은 정보전달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의사소통은 마음의 나눔이고, 생각을 함께 하는 것이다. 함께 한다는 것은 피자를 주문해서 나눠서 먹는 것과 같다. 나의 생각을 피자라고 하면, 그것을 나눠서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고, 상대방의 생각피자도 내가 함께 먹는 것이다. 그저 주는 것이 아니다. 이때 생각의 피자는 ‘나와 너의 생각들’임을 알 수 있다. 나만의 갇힌 생각은 혼자의 세계이다. 의사소통은 반드시 둘의 관계에서 생각과 의미가 공유되는 과정이듯이, 나의 생각세계와 상대의 생각세계가 서로 만나면서 의미와 뜻이 주고받는 과정을 겪을 때, 그것을 의사소통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의사소통은 삶이며, 생활이며, 구체성이다. 실제 생활속에서 누군가와 의미있는 무엇을 주고받을 때, 그것이 의사소통이다. 앵무새처럼 그저 문장을 나열하고 떠드는 것이 의사소통이 아닌 것이다. 혹시, 나만 말하고 있는가?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을 상대가 듣고 있는지, 상대의 입장에서 나는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 의사소통은 상대의 입장에서 나를 관찰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한 입체적 관계를 통해서 인지해야 의사소통의 맥을 제대로 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