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드라마 비평]=너도 인간이니 드라마는 시사하는 점이 많다. 과연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감정의 문제는 사람의 전유물이라고 하자. 사랑의 행동과 판단의 행동은 로봇이 독단적으로 할 수 있을까? 있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로봇으로 이동가능하다. 너도 인간이니 드라마는 로봇을 통해 인간사회를 조명하는 참신성이 있다. 심장이 없는 로봇이 심장이 있으나 심장이 죽은 인간을 판단한다.
“너도 인간이니?”
당랑재후라는 말이 있다. 그처럼, 강소봉이 누군가를 추적하자, 강소봉을 로봇 남신이 추적한다. 자동으로 판단한다.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로봇이라면, 로봇 남신은 스스로 판단하고 성장한다. 행동 모방학습을 통해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인지하고서 결정한다. 시키는대로 하는 것의 단계를 이미 초월했다. 로봇 남신이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자, 그것으로 위기를 모면했으나, 비서실장 지영훈은 로봇을 책망한다. 보고하지 않고서 행동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면 더욱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이제 로봇이 지영훈에게 믿는다.
“믿어도 되는 인간인가요? 아닌가요?”
지영훈은 당혹한다. 로봇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고,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성장하므로…..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로봇이 만약 인간의 피부를 가지고 인간처럼 특유의 목소리를 가지고서 판단하면서 말할 수 있다면, 심장의 고동소리는 만들어낼 수 있으니, 모든 것이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어진다면,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가 과연 평화로울까?
자율주행차가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는 ‘인간의 해킹과 욕심’이라는 변수가 배제된다. 모든 기술과 사업에는 침입자의 반대가 존재한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로봇 자체는 항상 통제가능한 기계이지만, 그 기계를 다루는 사람의 욕심은 통제할 수가 없다. 로봇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문제다. 칼도 선한 사람이 쓰면 선하고, 악한 사람이 쓰면 악하다. 어쩔 수가 없다. 자율주행차도 모든 것이 완벽한데, 갑자기 해킹한 외부 침입자가 들어오면서 도로의 무법자가 되고, 난폭운전을 넘어서서 인명피해를 일으켰다.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로봇 남신이 지영훈에게 말한다. “인간은 내 인지능력을 따라올 수가 없어요”라고. 사람보다 월등히 나은 로봇이지만, 사람들은 그 능력이 두렵다. 로봇이 점점점 성장하면서 시키지 않은 것까지 스스로 판단하면서 일을 수행한다. 로봇 남신은 인간 남신과 자신을 구분한다. 구분한다는 것은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과연 로봇이 자아개념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부분은 드라마가 너무 앞서 나간 것 같다. 자아 개념은 상대를 통해 자신을 구분하는 것이고, 자아개념이 로봇에게 인지된다면, 인간은 로봇의 사회를 인정해야할 것이다. 왜냐면 로봇이 로봇인 것을 인지하는 순간, 사람과 다른 차이점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것이고, 자신을 창조한 인간사회에 대한 로봇의 판단을 독단적으로 내릴 수도 있다. 이는 부모가 자식을 낳고, 자식이 부모에 대해 독립적으로 판단하듯 그러하다. 인지능력과 함께 자유의지가 부여되는 로봇의 창조가 과연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