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VIP는 매우 중요한 사람을 뜻한다. 특별한 능력을 가졌거나, 전문인으로 살아가는 사람, 그 단체에 중요한 사람은 VIP라고 불린다. VIP로 사람들은 대접을 받길 원하면서, 정작 하나님을 VIP로 모시며 살지 못한다. 하나님을 어디 세종대왕 동상보듯,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안타깝다.
내가 취재를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로 다양하다. 내 홍보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있고, 해줘도 좋고 안해도 상관없는 사람이 있고, 홍보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홍보를 반대하는 사람은 내가 만날 이유가 없다. 또한 인터뷰를 해도 그만, 안해도 상관없는 부류는 기사를 쓸 맛이 없다. 내 인터뷰가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눈빛부터 다르고, 내 자세도 사뭇 진지해진다. 사람도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이시랴!!!
“골라!! 골라!! 골라!! 오늘 사면 돈을 벌어가!! 골라!! 골라!!” 남대문 시장에 가면 자주 들리던 목소리다. 요즘은 없다. 남대문 시장 거리 질서 확립을 위해서 거리판매상이 사라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호객 행위를 할 때도 ‘간절한 목소리’로 외치면, 지나가다가 고개가 돌아간다. 하물며 하나님이시랴!!!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소경 2명이 예수님을 부르자, 제자들이 핀잔을 주면서 질책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을 데려오라”면서 그들의 소원을 들어줬다. 간절한 자는 하나님을 만난다. 만남으로 소원이 풀린다.
오늘 내 삶의 무대를 펼쳐놓고, 과연 1등과 2등과 3등과 4등과 5등….. 순서를 정해보자. 그냥 대충 살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해보자. 우리 동이족 선조들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동물의 서열을 정했다.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의 순서다.
학생들도 삶의 우선순위가 있다. 학교와 친구와 가족과 공부와 취미….. 모든 것이 필요하지만,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순위가 정해지면, 삶의 패턴이 보인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삶을 개척하면서 살았던 것 같지만, 정해진 틀에 갇힌 ‘루틴적’(일상의 반복패턴) 삶을 살았음을 알게 된다. 모든 우선권보다 최우선에 하나님을 두고 살길 권면한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면, 하나님도 ‘하나님을 최우선에 두는 그 사람’을 최우선에 두고 돕게 된다. 그것이 신령한 신앙의 세계다.
늙어서 교회에 다니면 구원이 있을까? 간혹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가 모두 끝나고 영화관에 들어가면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이 질문과 같다. 영화는 다음 타임에 볼 수 있지만, 인생의 영화는 1번으로 끝난다. 이후는 심판이 있다. 심판은 살았던 삶이 진리의 저울에 달리는 것이다. 선을 행했으면 선의 세계로, 악을 행했으면 악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선악(善惡)의 기준은 ‘하나님의 진리’임을 인지해야한다. 땅에 살 때는 땅의 법으로 판단받듯, 죽음 이후는 죽음 이후의 세계로서 하늘의 법으로 판단받는 것이다.
‘늙어서 교회에 다닌다’는 것은 곧 모든 일을 다 행하고 시간이 남을 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다. 인생의 모든 끝자락에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하나님을 붙잡듯, 날마다 삶속에서 자기 할 일 다하고, 욕정을 따라 행할 것 다 행하고, 시간이 조금 남으면 그때 하나님을 ‘심심풀이 땅콩’으로 찾으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을 받길 원한다. 그런 자에게는 ‘심심풀이 땅콩’ 정도의 축복이 돌아감이 마땅하다. 최우선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을 먼저 챙기시고, 혹여 시간이 남으면 끝자락에 심심풀이 땅콩을 찾는 사람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첫사랑이 딴 남자를 사랑하고서, 늙어서 사랑하자고 하면, 좋을까? 물론, 드라마 ‘같이 살래요’에서는 그런 첫사랑도 귀하게 받아드려진다. 그러나, 첫사랑은 첫사랑이고, 늙어서는 늙어서 사랑이며, 과정의 사랑은 부존재한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 인생도 동일하다. 하루의 첫사랑은 새벽사랑이며, 늙어서 사랑은 잠자기 전의 사랑이다. 과정의 사랑은 살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대화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삶속에 살면서 대화하는 ‘삶의 사랑’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일할 때는 열정을 불태우면서, 하나님을 가끔 생각하는 것, 하나님을 시간 확인하듯 생각하는 것, 그것은 하나님이 멀리 있는 것이다.
자기 삶속에 가장 사랑하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인식하고 살면 모든 혼돈이 질서로 잡힌다. 아브라함이 진정 그러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시니, 아브라함은 이삭을 과연 하나님의 것으로 드렸다. 이삭이 곧 하나님의 것이 된 것이다. 삶속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모든 혼돈이 질서로 잡힌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친 그 때, 하나님은 “내가 너를 이제야 믿겠다”고 하셨다. 인정받는 행위의 믿음을 보인 것이다. 신앙의 본질은 이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섬기고 모시면, 하나님도 반드시 삶속에서 최우선권의 축복을 주시며, 항상 먼저 선택하고 고를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 선택하고 고를 때에도 정보의 눈을 열어서 더 좋은 것을 고를 수 있도록 알려주신다. 반면, 하나님을 멀리하면 축복이 와도, 그 축복을 알아볼 눈이 열리지 않아서 축복을 멀리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최우선권 사랑의 혜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