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신앙칼럼]=택시를 타고 왔다가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새벽예배의 길은 쓰릴 만점이다. 오늘 가장 많이 반복된 단어는 ‘쓰릴’, 핵심 키워드는 ‘쓰릴’이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쓰릴’(thrill)은 ‘황홀’(恍惚) ‘흥분’(興奮) ‘설렘’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아!!! 오늘 말씀이 그러했다.
“나는 대패야 대패!!”
– 정명석 목사님 새벽말씀 요약노트
그가 ‘대패’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나는 잘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졸려서 그런가? ‘대표’라고 말씀하셨는데, ‘대패’라고 들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대패’라고 분명 말씀하셨다. ‘깎다’는 의미로서 사용한 것이다. ‘웃음’이 말씀의 주된 배경이었는데, 나는 ‘대패’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지금도 흐믓하다.
아~~ 그가 대패로서 ‘깎는 특기’로서 비싼 물건값도 깎으시고, 나의 굳은 인식관도 깎으시고, 권태의 게으름도 깎으시고, 피곤도 부드럽게 벗겨 깎으시니….. 역시 그는 ‘대패의 대표’이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은 부드러운 쓰릴의 대패질이었다. 대패질은 같은 동작의 무한 반복이다. ‘쓰릴’과 ‘웃음’으로 앞과 뒤를 반복하시니, 성도들은 부드럽고 매끈함으로 대패질이 잘 된 듯 하다.
어제 나는 새벽예배 때 암벽절벽을 탔다. 암벽절벽은 수직상승이다. 어제 새벽예배는 엄청나게 졸렸는데, 잠의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수직으로 올랐으니, 정신의 암벽을 탄 것이다. 나는 결국 하루종일 피곤을 이기면서 ‘빛의 색으로 만들어진 황제의 도장’까지 완벽하게 작품기사를 만들었다. 흥분(興奮)에서 흥(興)은 가마를 의미하고, 분(奮)은 큰 새가 날아오른 모습이다. 興은 땅에서 올라가는 것, 奮은 새처럼 하늘로 솟는 것이다. 흥분제를 먹으면 정신이 하늘로 치솟는다. 그러나, 흥분제의 마약을 살 돈이 없으면 폐인이 된다.
모든 흥분은 ‘변화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절벽을 오르거나,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속도를 높이거나, 속도를 늦추거나, 온탕에서 냉탕으로, 냉탕에서 온탕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생명에서 죽음으로, 갑작스런 반전, 묶었다가 풀었다가, 전쟁에서 평화로, 평화에서 전쟁으로, 배고픔에서 배부름으로, 배부름에서 배고픔으로, 모든 변화는 다양성으로 찾아온다.
이성(異性)의 쓰릴은 쾌락이다. 그러나, 순간적이고, 협소하고, 불법의 위험이 너무 높다. 이성(異性)이 쾌락인 것은 서로 다른 성별(性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와 같이 이견(異見)과 차이(差異)에 대한 이해도 흥분제가 된다. 나와 의견이 다른 것은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화목의 쓰릴을 주는 대상일 수 있다. 전화위복(轉禍爲福)도 변화의 쓰릴이다. 화날 일인데, 마음을 돌이켜서 웃을 일로 바꾼다면 그것도 부활의 쓰릴이다. 오늘, 뭔가 흥미진진한 변화가 몰려들 것 같다. 조짐이 좋다. 새벽에 졸렸지만, 벌떡 일어나 새벽예배에 참석한 기쁨이 지금까지 출렁거린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모든 글을 완성하는 것도 쓰릴 만점이다.)
** 해당 칼럼은 정명석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쓴 감동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