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신앙칼럼]=요즘 성경학원에 다닌다. 고등학교때 배웠던 성경의 깊은 진리를 차근차근 다시 배우는 기쁨은 희열이다. 알고 있던 진리의 말씀이 ‘녹슨 지식’으로 흐려져 있음을 강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거울을 보듯 보였다. 지인(知人)도 동일한 마음으로 배움에 동참했다. 배움이 용광로라면, 기꺼이 새로운 연장이 되기 위해 기존의 사상을 녹이리라!!!
2교시는 ‘태양아 멈추어라’이다. 먼저 1교시에 배웠던 내용을 복습했다.
애굽적 삶, 신광야적 삶, 가나안적 삶의 ‘기준’은 하나님이다. 강사님의 모든 설명은 ‘하나님의 기준점’에서 출발했다. 마치 창세기에 거론된 핵심적 말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연상케 했다. 하나님을 알지만 형식으로 알던 우리들, 하나님은 천국에 우리는 생활에서 각각 따로 살았던 우리들, 하나님의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생각한 적이 없던 우리들은 하나님의 애로사항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창세기 1장 1~4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의 보시기에’는 하나님의 관점(觀點)이다. 빛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좋아하듯, 삶속에서 우리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어떠한지 생각해야한다. 하나님의 의향을 물으면서 살아야하는데…. 자기가 좋아하는대로 살았던 것이다.
“자기중심이 곧 자기의 우상입니다. 자기중심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자신의 가치관, 습관 등이 있습니다. 좋을 때는 하나님을 찾다가, 힘들면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판단하는 것도 자기중심 우상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맞춰야하는데, 신광야적 삶은 자기합리화로 자신에게 하나님을 맞추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니, 자기를 신격화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하나님을 맞추면서 자기가 좋은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신광야적 삶입니다. 이 단계를 벗어나서 하나님께 자신을 맞추는 것이 곧 가나안적 삶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100%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이 주실 가나안적 축복을 받을 수 있어요”
– 성경 강사님 강의 요약노트
성경 강사님이 “성경도 기본을 몰라서 무식하게 풀었다. 유대인이 그러했다. 성경의 기본을 몰라서 유대인처럼 구원주를 몰라보면 안된다. A를 가르쳤는데 B로 간다면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동쪽으로 가라고 했는데, 서쪽으로 가면…..”
지인(知人)의 눈빛이 새벽별처럼 반짝 빛난다. 뭔가 깨달음의 스위치가 켜지는 듯 했다. 그때마다 성경 강사님은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져서 말할 기회의 마이크를 건넨다. 이번 강사님의 탁월한 실력은 배려를 통한 대화식 성경학습이다. 사연을 들으면서 강물이 밀물로 썰물로 반복하듯이 배우는 학습자도 깨달음을 강의도중에 설명하고, 강사님도 강의를 하면서 사연의 깊이가 출렁인다. 지인(知人)이 누군가에게 A를 알려줬는데, 말귀를 못알아듣고 B를 행했던 안타까운 사건이 떠올라서 자신이 하나님께 그러함을 진정 깨달았던 것이다.
오늘 성경공부는 2개 과목을 배웠다. 하나는 태양아 멈춰라, 다른 하나는 불심판과 말세론이다. 4시간은 생각보다 짧고 재밌게 흘렀다.
가나안에 들어가 원주민 31개 부족과 싸운 사건은 우리의 생활전쟁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성경 강사님은 정말로 쉽고 간편하게 핵심을 서술했다. 스토리텔링 기법이며, 중간중간 날카로운 깨달음을 던져서 교육효과가 나타날 때는 “이러한 해석은 정명석 목사님을 통해서 배운 내용이다”고 정확히 언급하면서 진리의 저작권법을 준수하는 인격을 풍겼다.
여호수아서 10장 12절~14절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아모리 족속과 전쟁한 내용이다. 태양도 멈추고, 달도 멈췄다는 내용이다. 우주쇼로 달이 블러드문이 되는 자연현상이 종종 뉴스에 등극한 것처럼, 태양이 멈추고, 달이 멈췄다는 성경적 사건은 놀라운 기적이다.
“태양은 본래 멈췄다.”
달은 지구를 공전하지만, 태양은 공전하지 않고, 지구가 공전하다. 태양은 본래 멈췄는데, 멈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성경 강사님이 “천동설적 사고관에서 태양이 도는 것 같아서 그렇게 기도한 것이다. 지구가 돈다. 여호수아 시대는 3400년전, 갈릴레이 지동설은 400년전이다. 지동설의 과학지식을 안 것도 불과 400년밖에 안된다. 성경에 태양이 멈췄다고 기록했어도,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함께 해서 시간적 승리를 했다는 표현이다.”고 설명했다. 과학의 무지가 벗겨지니,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진실로 드러난 것이다. 태양이 멈추는 것은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지만, 시간적 승리는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촉박한 시간에 ‘시간의 칼자루’를 잡고서 그 일을 해낼 수가 있다.
여호수아서 10장 11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게다가 바로 앞 구절에는 ‘우박을 통한 전쟁협력’ 사건이 나온다. 하나님이 우박을 통해서 함께 하셔서 적과 싸움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싸울 때는 자신만 땀을 흘리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우박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 도우신다. 영감과 지혜를 통해서, 돕는 사람을 통해서, 여건이 조성되면서, 때론 여건이 틀어지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돕고 행하신다. 성경 강사님이 ‘우박 사건’을 비유적으로 설명하자, 지인(知人)은 비로소 자신의 생애가운데 우연하게 일어난 놀라운 기적이 하나님과 연결되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고 인정하였다. 하나님과 생각이 연결되도록 성경강의가 쉽고, 깊고, 흥미로웠다.
PS. 말의 악수시대를 살아갑니다.
손을 잡는 것을 서양식 인사법으로 ‘악수’(幄手)라고 한다. 본래 한국의 전통 인사법은 고개를 통해, 허리를 통해 이뤄졌다. 왕이 행차하면 백성들은 무릎까지 굽히면서 인사를 했고, 어른을 만나면 배꼽인사를 했다. 피맛골은 귀족들의 말(馬)을 피해서 다닌 뒷골목으로 백성들의 애환이 남아있는 유적지다. ‘악수’(幄手) 문화에 대해 정명석 목사님이 “말이 악수다”라고 새벽말씀에 전했다. 즉, 말의 악수시대다. 어른을 멀리서 보면, “안녕하세요”라고 말로서 먼저 달려가서 만난다. 동방예의지국의 후손답게 우리도 때론 품격있는 인사법으로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합당하다. 말만 해도 악수를 한 것이다. 오늘 새벽 그리하여 나는 정명석 목사님과 말로서 ‘악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