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장창훈 의학전문기자]=“편식하면 안좋다”라고 어르신들이 자주 말했다. 계란을 극도로 싫어하거나, 좋아하면 야단을 맞는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여기에 적용되고, 중용(中庸)도 동일하다. 중용(中庸)은 중용(中用)과 같다. 가운데를 사용한다는 것은 균형이론의 핵심이다. 민주주의 기본원칙 3권 분립도 ‘중용의 균형이론’이다. 누구도 힘을 갖지 않으면서 힘을 갖게 하는 것이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이다.
체형분석의 기본은 ‘밑이 기울면 위도 기운다“이다. 어느 쪽이 기울었다면, 그 원인을 찾아야한다. 인체는 전체적으로 연결되어서 그렇다. 제1 원인 지점을 찾아야만, 재발하지 않는다. 보이는 현상과 보이지 않는 원인을 연결하는 것이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만약, 어깨가 기울었다면 그 원인이 어깨 자체인지, 혹은 다리인지, 혹은 발인지, 발가락인지 파악해야한다. 모두 연결되어서 그렇다.
발의 힘이 없는 것과 어깨가 기울어진 것은 서로 연결된다. 어깨의 통증을 해결해도 다시 재발하거나, 어깨를 풀어줘도 어깨가 계속 기운다면, 그것은 원인이 다른 데 있을 확률이 높다. 이것이 체형분석의 기본이론이다. 조금 더 넓게 원인을 찾는 것이다.
화면을 확장하라!!
어떤 교사가 있었다. 보여지는 화면에 그 자상함은 테레사 수녀처럼 온화함이었다. 지극 정성을 다해서, 아이들에게 낮은 자세로 봉사하는 모습은 아름다움 자체다. 교실안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이것은 프레임이다. 교사와 아이만을 보여줄 때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보여진다. 반면, 그 프레임을 보여주는 VDO까지 포함해서 전체 교실을 비춘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교사가 헌신하는 그 아이옆에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가 비켜서 있었다. 가정이 부유한 부모의 자녀들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는 교사였던 것이다. 전체를 확장하면 정반대 해석이 나온다. 편파적인 교사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부분으로 보는 것과 전체로 보는 것은 해석이 정반대다. 체형분석도 마찬가지다. 특정 지역만 비교하면 정상으로 보여도, 전체로 비교하면 비정상인 것이 많다.
인생을 살면서, 균형이론을 머리에 입력하고 살아야한다. 균형은 반드시 2가지로 존재한다. 거룩할 성(聖)을 보면, 귀와 입이 함께 있다. 귀는 듣는 것, 입은 말하는 것이다. 둘은 균형의 짝궁이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은 함께 균형을 이뤄야 소통이 발생한다. 소통은 말함과 들음의 쌍방향 통행이다. 대화는 반드시 서로 주고받음인데, 화자와 청자가 함께 마음을 다해서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다. 말하는 것만 발달하면, 그것은 말하는 것으로 치우쳐서 기울어진 사람이고, 말은 안하고 듣고 비판하는 것에만 강한 사람은 그것도 치우친 것이다. 말함과 들음은 함께 균형을 이뤄야한다.
욕심과 베품도 동일하다. 욕심(慾心)은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열정을 뜻한다. 욕심 자체는 좋은 것이다. 의지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극단적 욕심은 이기주의가 되어서,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 지나쳐서 상대를 해롭게 하는 지경에 이른다. 지나친 욕심은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베품은 나눔이며, 자신의 것을 주는 것인데, 무조건 나눠주고 자신의 것을 챙길 줄 모르는 사람도 결국 낭패를 당한다. 균형이 무너져서 그렇다. 자신이 없다면 상대도 없고, 상대가 없으면 자신도 없다. 욕심과 베품은 균형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힘에는 정반대가 반드시 존재한다. 정반합(正反合)과 같다. 반대 힘이 상실되면, 본래 힘도 무너진다. 빙판길에서 사람은 설 수 없다. 그 이유는 마찰력이 상실해서 그렇다. 마찰력은 반대로 작용함으로 사람이 서있게 한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손뼉을 마주칠 때 손바닥은 반드시 서로 반대방향이다. 그래야 소리가 난다.
균형이론은 호르몬에도 적용된다. 모든 호르몬은 분비와 정지로 작동한다. 호르몬이 좋다고, 무작정 투여하면 인체의 호르몬 분비 시스템이 망가진다. 좋다고 무조건 과용하면 안된다. 밸런스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작은 것도, 큰 것도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