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떤 교회에서 목사님이 라헬이 훔친 드라빔의 영적 의미에 대해 심도깊는 성서강해를 해주셨다. 30년동안 나는 “왜 드라빔을 훔쳤지? 우상을 없애려고?”라고 생각했는데, “라헬이 의지했던 우상숭배”라고 해석했다. 마치 부적처럼, 라헬에게는 자신의 아버지가 믿은 드라빔의 신통력이 남편을 따라 나서는 미지의 여행에서 축복을 보장해줄 ‘보험증서’로 믿었던 것이다. 그러한 설명을 듣는데, 나는, 성도들은, 각자의 드라빔을 마음 깊은 곳에서 발견하였다. 전통이 물려준 드라빔, 사회가 물려준 드라빔, DNA가 물려준 드라빔, 역사가 증명해준 드라빔, 그리스 문명의 수많은 신들처럼, 아름답게 포장된 이론들이 드라빔이다. 핸드폰처럼 신을 선택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라헬은 드라빔을 치마폭에 숨기고서 “생리중이다”고 거짓말을 한다. 어쩌면, 축복을 받으려고 아버지에게 “내가 에서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던 야곱과 흡사하다. 이름까지 속였던 야곱처럼, 라헬은 생리주기까지 속이면서 드라빔을 숨겼다. 예배가 끝나고, 나는 정말로 감동되었다. 목사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성도들과 함께 피자를 먹으면서….
내가 말했다.
“드라빔의 우상숭배 성경해석은 제 마음에 깊은 감동을 줬어요. 어디서 들어본 적 없는 깊은 통찰력이예요”
목사님이 대답했다.
“정통 유대인 랍비들의 해석을 배워서 말해준 것이예요. 제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 입장에서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권위와 명예와 존귀를 얻는 것일텐데, 성도들이 있는 곳에서 “드라빔 비유는 유대인 랍비들의 전통적 해석”이라고 정확하게 말했다. 드라빔!! 작은 것부터 그것을 없애려는 지식의 겸손이 향기처럼 밀려왔다. 나는 작가라서, 창작권(저작권)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 연구한 것, 그것은 과학자에게 발명과 같다. 지식의 발명은 곧 ‘저작권’이라고 한다. 성경해석도 저작권이 있다. 그 저작권에 대해, 목사님은 자신이 배운 출처를 내게 분명히 말해준 것이다. 누군가에게 돌아갈 작은 영광이라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지 않으려는 겸허함이 있었다. 아멘!!
누군가 내게 말한다.
“역시 국문과 출신답게 글쓰는 솜씨가 대단해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라헬처럼, 야곱처럼, 나의 출신을 숨기고 침묵하고 싶어한다. 침묵은 동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출처를 공개한다. 속임수의 드라빔을 없앤 것이다.
“저는 국민대 기계과 출신입니다. 공돌이예요”
또 누군가 내게 말한다.
“교육방송 국장님이시죠? 이번 기사 정말로 감사해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라헬처럼, 야곱처럼, 역시 나의 출신을 숨기고 침묵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신분을 공개한다.
“교육방송 아닙니다. EBS도 아닙니다. 비슷할 뿐, 전혀 달라요, 인터넷 뉴스, 서울교육방송입니다. 네이버에 서울교육방송으로 검색하면 홈페이지가 나옵니다”
야곱이 “내가 에서입니다”라고 속이듯, 나는 살면서 “내가 했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 많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두 인간의 얄팍한 꼼수일 뿐이다. 꼼수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지 못한다. 꼼수에는 꼼수의 동전이 찰랑 거릴 뿐, 하나님의 거대한 복권은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그때, 단상에서 목사님은 “잔머리를 굴리는 것, 그것 하지 말라는 거예요.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해서, 졌어요. 그것을 장엄한 패배라고 해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이겼다는 뜻인데, 하나님을 이겼다로 반대로 해석해요. 하나님과 싸워서 위대한 패배를 인정하자, 비로소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위대한 승리를 하는 야곱입니다”
– 설교말씀 요약노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