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낙원을 천국보다 못한 국가로 인식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강도에게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고 했던 그 말씀이 중요한 근거였다. 낙원이 천국보다 못한 곳, 이러한 주장은 원리강론의 중요한 뼈대다. 천국과 낙원이 다르듯이,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전했다가 실패해서 낙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내가 30년 있었던 곳도 낙원은 우주안에 있고, 천국은 우주밖에 있다고 해석했다.
천국은 ‘하늘의 국가’이고, 낙원은 즐거운 동산으로 에덴동산에 비유되는 단어다. 천국복음과 낙원복음이 있다는 의미로서 설명되어진 원리강론은 한국과 서울이 같은 비교대상으로 놓은 것이다. 나는 서울에 있다. 서울에 있으니까 한국에 없는가? 서울에 있으면서 한국에도 있다. 천국과 낙원은 이러한 개념이다. 낙원은 천국속에 존재한다.
낙원이 천국보다 못한 곳이라면, 예수님은 “낙국(樂國)에 있으리라”고 했을 것이다. 낙원에 있으리라고 했던 것은 천국속에 위치하는 낙원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계시록 2: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시록 22:2]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창세기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낙원에는 생명나무가 있다. 구약의 에덴동산에 생명나무가 있었다. 신약의 계시록에 보면 새 예루살렘에 생명나무가 있다고 했다. 생명나무가 있는 곳이 바로 낙원이고, 에덴동산이다. 천국과 낙원은 한국과 서울처럼 전체와 부분의 관계이지, 높고 낮음이 아니다. 낙원이 천국보다 못하다면, 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은 분명 낙원을 포함하고 있는데,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저승은 이승의 반대말이다. 죽음은 생명의 반대말이다. 죽음 자체가 지옥이 아니다. 죽음 이후에는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통칭하는 표현이며, 그 천국속에 낙원도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 간다고 했는데, 파리에 도착했다고 하자. 그 사람은 프랑스에 가지 못했나? 파리에 간 것이 바로 프랑스에 간 것이다. 낙원이 천국보다 못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파리가 프랑스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천국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생명나무가 있다. 낙원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생명나무가 있다. 낙원과 천국의 속성이 같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천국은 넓은 범주이며, 낙원은 천국안에서 핵심적인 범주이다. 우주가 천국이면, 지구가 에덴동산(낙원)이다. 낙원은 천국중에서 가장 핵심지역인 것이다. 마치 한국의 서울, 미국의 워싱턴, 프랑스의 파리, 영국의 런던과 같다. 서울에 도착했으면 한국에 온 것이다. 낙원에 도착한 것은 천국에 간 것이다.
[마가복음 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사도행전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마태복음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성경을 통해 상고하면, 예수님은 강도에게 “낙원에 가자”고 했는데, 천국에 계신다. 그러므로, 천국속에 낙원이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는 지구에 있으니, 또한 우주속에 있는 것이다. 지구는 우주속에 있어서 그렇다. 그와 같이 예수님이 낙원에 가자고 한 것은 천국에 가자고 한 것과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