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은 여전히 난해(難解)하다. 실체와 비유와 예언이 비빔밥처럼 섞여있으니, 또한 현대인은 계시록에서 너무 먼 시간을 살고 있으니, 사극을 보는 시청자일 수밖에 없다. 나는 계시록 애독자(愛讀者)다.
선물받은 “이것이 복음이다”(톰 라이트)를 읽고, 충격이 떠나지 않는다. 예수 왕(王)이 실제로 KING을 의미함을 확인하고서, “천국이 가깝다”고 한 것은 바로 지상천국으로서 예수님이 건설하려고 했던 유토피아였음을 확인하고서, 성경이 다시 보였다. 그래도 난해(難解)한 성경이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힘없는 청년 예수, 십자가에 메달린 그 예수가 로마황제를 통치하는 왕권(王權)을 받았다고 바울이 역설했으니, 그의 국회의원 이력(履歷)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이 많았을 것 같다. 왕(王)은 죽으면 안되는데…. 십자가의 본질이 여기에서 시작한다.
30년전, 나는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러 보냈겠는가. 십자가는 뜻이 아니다. 영광의 십자가가 뜻이고, 재림주는 그래서 다시 온다”라는 그 메시지가 나를 불태웠다. 내 청춘 30년이 그렇게 불탔다. 그리고, 세월의 뒤안길에서 바람처럼 배달된 기쁜 소식이 있어서 들어봤더니, (듣기전에는 나쁜 소식, 무서운 소식으로 여겼다) “죽은 예수가 바로 왕이다”라는 뉴스(소식)였다. 나는 많이 당혹스러웠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배운 바로는 故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듯, 그렇게 옛 시대의 메시야로 끝나셨는데, 모세가 신광야에 머물 듯 예수도 신약에 머물러야 하는데, 그 예수가 아직도 천국의 정권을 잡고 있다고 하므로…. 그 두려움은 반드시 확인해야할 정보였다.
그렇다. 이것은 정보다. 유언비어와 정보가 소문의 바다에서 함께 휩쓸릴 때, 진실한 정보는 노아의 배처럼 생명이 위태롭지 않다. 예수님도 당신을 비유해서 ‘반석위에 집을 건축하라’고 하셨다. 믿을만한 정보라는 것은 지금 미국의 대통령이 트럼프인지, 오바마인지, 아는 것과 같다. 지금 북한의 실권이 김정은에게 있는지, 혹은 다른 인물에게 있는지, 그것처럼 중요하다. 2019년 1월 9일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권력은 문재인 대통령이지, 박근혜 대통령은 아니다.
이단은 꼭 철학(哲學)같다. 또한 복음도 철학의 옷을 입고 있다. 들어보면, 각자 명확한 논리가 있다. 허무맹랑한 소리들이 아니다. 가장 허무맹랑한 소리는 ‘기독교 복음’일 것이다. 저주의 십자가는 누가 봐도 명확한 혁명의 실패인데, 실패의 상징인 그 십자가를 ‘승리의 깃발’로 표적삼은 초기 예수의 추종자들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었을까? 그들은 십자가를 ‘왕국의 도래’를 암시하는 결정적 증거로 내세웠다. 2천년 역사는 기독교가 곧 예수님의 예언대로 인류문명의 중심축을 형성했다.
하늘의 천국은 이미 완성됐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뜻이 이뤄진 것같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땅에서도 그 뜻이 이뤄져야한다. 그것이 지상천국이다. 지상천국은 북한이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나,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대국으로 만들겠다고 한 것이나, 박근혜 대통령이 행복국가 건설을 하겠다고 한 것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청산 국가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나,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독립을 쟁취하겠다고 한 것이나, 같은 뜻이다. 예수님은 실제로 ‘국가건설’을 목표로 했고, 그것이 천국이다. 천국을 땅에 건설하는 이상세계가 예수님의 프로젝트였다. 믿기지 않지만, 복음서가 말하는 실제 내용이다.
2천년이 지나서 예수님은 정말로 레임덕인가? 그래서 이곳 저곳에서 이단들이 정권탈환을 목적으로 ‘적그리스도’의 오명을 쓸지라도 선거를 치르는 것일까? 정말로 그런가? 이런 합리적 의심이 든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자, 기업인들은 벽에서 그녀와 찍은 사진을 내리듯, 인간의 당연한 심리다. 실권을 누가 잡았느냐, 이것은 가장 확실한 보험증서다.
내게 물으면, 나는 성경속에서 예수님의 임기가 단임제인지, 중임불가인지, 2천년으로 제한된 것인지, 탄핵이 가능한 왕권인지, 그것을 확인해야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 답은 나도 알지 못하므로….
최소한 나는 이것을 확인하였다. ‘이것이 복음이다’ 책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로마 황제를 다스리는 황제’로 선언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고 실제 선언이다. 십자가에서 ‘황제를 다스리는 용’을 죽임으로 예수님이 진정한 황제가 되셨고, 나머지 땅의 왕들은 용의 잔당이므로 결국 소탕될 잔병(殘兵)에 불과했다. 사도 바울의 복음은 이것이 핵심이다. 그 예수님이 지금도 통치하실까? 이것이 나의 괴로운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