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장]
5.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7.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창세기 29:9]
9.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중에 라헬이 그 아비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침이었더라
10.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11.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내어 울며
예수님을 ‘태초의 말씀’으로 증거한 사도 요한은 ‘설교말씀’을 중심해서 예수님을 증언했다. 그 중에 사마리아 여인과 만남이 에피소드로 들어있다. 요한은 많은 사건중에 왜 사마리아 여인과 만남을 기록했을까? 요한복음을 읽을 때, 이러한 의문과 질문을 던져야, 작가로서 요한의 관점을 갖게 되고, 그러한 질문의 배를 타고서 주님께 들어갈 수 있다. 어떤 TV광고에서 영화속 원탁의 기사가 갑자기 스크린을 뚫고 현대사회에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처럼, 독자는 질문과 의문을 통해서 성경속으로 들어가서, 주님과 만날 수 있고, 깊은 성찰과 묵상과 연구를 통해서 성경의 우물에서 주님을 발견하여 현실의 수면위로 올릴 수 있다. 모두 하기 나름이다.
사도 요한은 ‘야곱’과 ‘야곱의 우물’을 2번이나 기록하였고, 본문에서도 사마리아 여인은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라고 묻고 있다. ‘야곱’이 2번이나 나오며, 예수님을 야곱과 비교하는 질문이다. 이는 야곱의 우물과 연관해서 깊은 묵시를 감춰놓은 편집이다.
“(주님은)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쌔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는 말씀처럼, 야곱도 고향 가나안을 떠나서 밧단아람으로 가야했다. 야곱의 노정과 주님의 노정이 본문의 사건에서는 동일하다. 야곱은 그 우물에서 라헬을 만났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다. 야곱은 결국 라헬의 남편이 되었고, 예수님은 진정한 사마리아인의 남편임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혈통적 남편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신앙적 남편이다.
야곱은 라헬이나 레아에게 신앙적 남편이 되지 못하였다.
반면,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동네 주민 모두에게 신앙적 남편이 되었다.
야곱은 라헬을 얻으려고 라반을 섬기면서 7년을 보냈다. 야곱은 라반에게도 신앙적 남편이 못된 것이다. 신앙적 남편이 되려면, 자신부터 하나님을 남편으로 삼고 살아야한다. 자신이 자신을 믿고 사는 사람은 ‘신앙의 독신주의자’이다. 인생은 반드시 창조주 하나님을 남편삼아 살아야한다.
사마리아 여인이 “남편이 없다”고 하니, 예수님은 “네 말이 맞다. 남편이 5명이 있었고, 지금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다”라고 말씀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야곱도 수많은 신앙의 남편들이 있었다. 아버지 이삭을 섬김의 남편으로 받들었고, 도망자가 되었을 때는 라반을 직장의 남편으로 섬겼고, 결혼한 후에는 라헬을 사랑으로 섬겼고, 양떼가 늘어나는 재산축적을 경제적 남편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얍복강에서는 사랑하는 부인과 자녀들도, 수많은 양떼들도, 섬겼던 라반도 ‘영원한 남편’이 될 수 없었다. 인생도 결국 죽음의 강앞에서는 영원한 남편을 만나야한다. 그 때가 오기전에, 영혼의 남편되신 하나님을 만나서 사귀면서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한다.
드라마는 짜릿하고, 영화는 전율한다. 그러나, 다시 목마르다. 영원한 감동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성경의 우물을 묵상한다. 성경의 샘물은 드라마나 영화와 많이 다르다. 사건이 묘하게 역전되면서 내 인생을 주인공으로 만들었다가, 엑스트라로 만들었다가, 악역으로 만들었다가, 반전을 시켰다가, 끝은 항상 주님의 마침표로 마친다. 예고편은 언제나 부활과 재림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의 인생이 며느리를 잘못 얻은 유다처럼 늪에 빠진 듯 하여도, 욕정을 참지 못함으로 덫에 걸려서 며느리와 동침한 비극의 주인공 유다가 된 듯 하여도, 그 유다의 후손에서 위대한 다윗왕이 나왔고, 그 다윗왕이 말씀을 어기면서, 충성자를 죽이면서 얻었던 유부녀 밧세바를 통해서 얻은 솔로몬이 성전건축의 꿈을 실현하고, 그 후손을 통해서 예수님이 오셨으니, 인생의 새옹지마, 그 끝을 누가 알 수 있으리요. 마침표는 오직 주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