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마태복음 5장 27~32절은 지키기 부담스럽고 불편한 말씀이다. 읽을 때마다 건너뛰고 싶은 성경말씀이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취임연설문과 같고, 천국 헌법조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율법의 완성으로서 살인죄는 미움죄로, 간음죄는 음란죄로 확장하면서 성도들에게 ‘일점일획까지 준수할 것’을 엄중히 요청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나은 의(義)를 행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으니, 음란죄(淫亂罪)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할 성도의 당면 과제다.
마태복음 5장에 오른눈과 오른손이 나온다. 이것은 관음증과 바람피는 것을 염두한 성경말씀일 것이다. 이것을 모두 어찌 극복하랴. 옛날에는 관음증이 간혹 있었으나 요즘은 음란물이 넘치는 영상시대이니, 관음증은 현대인의 보편적 일상생활로 자리잡았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국회가 인권법을 논의할 정도이니, 성소수자들의 성생활까지 사회가 보호할 정도니, 현대인의 다양한 성생활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언젠가 목사님이 “히브리어로 동사는 지속적, 계속적, 습관적, 반복을 의미한다. 음욕을 품고는 음욕을 둥지틀 정도로 품는 것으로 품지 말아야할 여자를 음욕을 품고서 계속 쳐다보고, 음란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해줬다.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이성의 생각이 ‘음욕의 간음’은 아닌 것이다. “음욕을 품고 (날마다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습관적으로 같은)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로 이해하면 된다. 결국, 품지 말아야할 여자에게 음란한 생각이 발생할 때, 생각에서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 겨자씨같은 작은 생각이 점점점 자라서 음란의 나무가 되어서 ‘간음의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오른눈으로 실족한다’는 것도 앞에 나온 문장으로 ‘음욕을 품고’와 연결된다. 눈으로 보면 음욕이 생긴다. 품어서는 안될 어떤 여자를 볼 때마다 음란한 생각이 든다면, 그 여자와 계속적으로 만나면서 그러한 위험한 관계가 발생한다면, 오른눈을 빼듯이 그러한 관계설정을 끊어야한다. 이웃집 여자와 그런 관계를 맺었다면, 이사를 가야한다. 주님은 그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사를 가면, 직장을 옮기면 오른눈을 빼듯이 안보게 된다. 그러한 결단을 통해서 습관적 음욕의 상황을 제거할 수 있다.
오른눈은 시각을 통한 음욕발생이고, 오른손은 접촉을 통한 음욕발생이다. 손으로 만지면, 남녀는 이성의 감정이 불꽃처럼 번진다. 그런데, 품지 말아야할 상대, 만지지 말아야할 사람일 때 ‘미투운동의 문제’가 발생하니, 그런 낌새가 생기면 끊는 것이 급선무다. (오른손을 자위행위로 해석하는 종교도 있다.)
왜 음란한 생각이 생길까? 왜 여자를 품는 마음을 둥지틀 정도로 품고 살까? 그것은 그리스도를 남편삼지 못한 형벌이다.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남편삼고, 말씀을 둥지로 삼아야만 음란이 치유된다. 머릿속에 ‘음란의 알’이 계속 있다는 것이 ‘성령의 생각’으로 살지 못한다는 증거다. 성령으로 살기 위해서는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생활을 해야한다. 성령의 둥지에는 ‘뻐꾸기의 음란한 알’이 들어올 수 없다. 성령의 둥지로 만들기 위해서 사람은 ‘말씀과 기도’로서 날마다 둥지집을 지어야한다. 또한 음란한 생각이 거미줄로 쳐지면, 없애면 된다. 쉽게 생각하면 된다. 음란한 거미줄이 철조망처럼 굳어질 때,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마태복음 5장]
27.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