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쌀을 1가마 보내주셨다. 1년은 넉넉히 먹을 것이다. 내년에는 새로운 쌀가마가 올라올 것이다. 물질은 이렇게 한번 쓰면 소모된다. 반면, 말씀의 지식은 계속 사용된다. 성경말씀은 읽어도 읽어도 소모되지 않는다. 한번 읽은 성경을 또 읽어도 지식은 그대로 있다. 지식의 세계는 물질과 달라서 참 좋다. 내가 출판한 십자가 복음은 총 5권이다. 그 중에서 2권을 읽고 있다. 내가 쓴 책을 다시 읽는 것도 내게 도움이 많이 된다. “내가 이렇게 썼다고?”라는 감탄사가 몇 번씩 나올 때가 있다. 아마도, 성령께서 감동으로 나를 펜삼아 썼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쓴 책을 내가 다시 읽어도 감동이 있다.
‘천주교가 로마제국의 옷을 그대로 입고’라는 대목에서 눈길이 머물렀다. “권력의 무서움”도 다시 깨닫고, 주님께서 베드로를 붙잡고 “권력의 칼을 조심하라”고 교육했던 것도 생각났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세족식으로 권력의 족쇄를 끌러주신 것도 생각났다. 제자들의 발에 묶인 권력의 쇠사슬을 끌러주시면서 당신은 사형수의 형틀에 온 몸이 묶였다.
제도와 건물을 중심하는 집단은 ‘공산주의 시스템’이다. 공산주의 시스템은 ‘집단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그리스도의 통치는 ‘보수적 시스템’으로서 사람중심 운영체제다. 사람이 바뀌어야 사회가 바뀐다. 주님의 교육철학이다. 주님은 사람의 변화를 요구했고, 그 시작점은 주님부터 했다. 주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정체불명의 임산 스캔들로 ‘낙태수술’로 유산될 위험에 처했으나, 남편 요셉의 은혜로 이혼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으면서 헤롯왕의 학살로 죽임을 당할 뻔했다. 죽음과 함께 어린시절을 보냈던 예수님이다. 그런 힘든 세월을 보내서 특히나 생명을 다루는 종교인의 책무에 있어서 누구보다 애틋하고, 강단있는 모습을 보이셨다. 공산주의 혁명은 제도를 바꾸는 댓가로 사람을 학살한다. 반면 그리스도의 혁명은 사람을 변화시킴으로 사회를 서서히 새롭게 한다. 혁명은 오직 그리스도의 혁명을 해야한다. 그리스도의 혁명은 ‘나로부터 변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