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청년 사건은 공관복음에 모두 나온다. 구원을 얻고싶은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구원의 길’을 묻자,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더니, 크게 근심하고 돌아간 사건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듯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말씀했다. ‘낙타’는 ‘밧줄’을 잘못 들은 제자의 기록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람은 늘 잘못 알아듣고, 과민반응한다. 자기식으로 알아듣는 것이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그 부자청년을 “사랑하사”라고 기록했다.
[마가복음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마가복음과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은 비슷한데, 딱 한가지가 다르다. 마태복음에만 ‘네 소유를 팔아’이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네 소유를 다 팔아’이다. 둘은 하늘과 땅의 차이다. 과연, 예수님이 어떻게 말했을까? 제자들은 ‘밧줄’도 ‘낙타’로 알아듣는 아둔함이 많다. ‘바리새인의 누룩’을 말하니 ‘먹는 떡’을 생각하는 제자들이다. 과연,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했을까? 마태의 기록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제자들에게 그렇게 들린 것이다.
제자들에게 그렇게 들린 사례는 아주 많다. 결정적인 사건이 겟세마네 동산이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려갔다. 베드로는 십자가 사건을 대놓고 반대했다. 예수님이 기도를 부탁했을 때, 베드로는 무엇을 기도했을까? 기도했던 내용으로 예수님을 생각한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 완전히 다르다. 공관복음은 “이 잔이 내게서 피하게 하소서”라고 했다면, 요한복음은 겟세마네 동산 기도자체가 없고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졸았던 제자들이 어찌 예수님의 기도내용을 들을 수 있었을까? 요한의 기록이 매우 합리적이다.
예수님은 “네 소유를 팔아서 나눠주렴”이라고 말했는데, 부자청년은 “네 소유를 모두 팔아서 나눠주라!!”고 과민반응을 한 것은 아닐까? 삭개오 집에 구원을 선포한 예수님의 인품을 보면, 부자청년을 전도하시려는 예수님이신데, “소유를 다 팔아”로 말씀하실 까닭이 없다.
[마태복음 19:21]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마가복음 10:21]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누가복음 18:22]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