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카톡으로 문자를 받았다.
“창훈님의 ”박넝쿨’은 무엇입니까? 그렇게나 애지중지하던 박넝쿨 말입니다. 우리에겐 모두 각자의 박넝쿨이 있을것 같습니다. 그것이 시드는 날에는!?”
하루종일 이 말이 나를 ICBM처럼 따라다니며, 유령처럼 괴롭히며, 벌레처럼 나를 고달프게 했다. 아!! 나의 박넝쿨은 무엇인가? 있다고 하면 시들 것이요, 없다고 하면 나는 참 불쌍한 자이니, 무엇이 나의 박넝쿨인가? 억지 반, 믿음 반, “예수님의 십자가”라고 혼자 고백했다. 송창식의 ‘푸르른 날에’ 곡을 추천받았는데, 마음이 아린다. “내가 죽고 너가 산다면” 이런 삶을 누가 살 수 있는가? (나의 작은 박넝쿨이 시들지 않기를…)
[요나서 4장]
6.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