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수르 살만에셀이 BC722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다. 그때 남유다는 히스기야가 다스렸다. 선지자는 이사야다. 이사야는 히스기야(30년 통치)와 므낫세(55년 통치)까지 활동했다. 북이스라엘에 엘리야와 엘리사가 있었다면, 남유다에는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있었다. 예레미아는 므낫세의 손자 요시야왕(30년 통치)때 활동한 선지자다.
BC760년 요나 선지자는 앗수르 니느웨성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을 경고했다. 그때 니느웨성은 전염병이 2번이나 휩쓸었고, 일식현상 때문에 민심이 흉흉했다. 갑자기 나타난 이방 선지자 요나의 설교는 왕과 신하의 회개운동을 일으켰다. 요나 선지자는 생각지 못한 돌발상황에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그리고, 북이스라엘로 북귀했다. 이때가 예후정권 말기 ‘여로보암’ 시절이다. 북이스라엘은 요나의 박넝쿨 계시처럼 40년후 멸망했다. 요나가 죽음을 각오하고, 니느웨성에서 설교하지 않았으면, 니느웨성이 멸망하고 앗수르는 국운이 쇠퇴했을까?
앗수르는 남유다를 멸망시키고, 20년후 다시 남유다를 침공했다. BC700년이다. 앗수르왕은 산헤립이다. 랍사게는 요나와 전혀 다르게, 야훼신앙의 변절자로서, 앗수르에서 성공한 유대민족으로 보여진다. 아람말과 이스라엘말에 유창한 것을 보면, ‘친일파’와 흡사하다. 요나가 니느웨성에서 그들의 말로 설교를 했을 것이다. 요나와 거의 흡사하게, 랍사게는 남유다의 멸망을 경고한다.
놀랍게도, 히스기야와 신하들은 니느웨성처럼 회개운동을 한다. 진정, 하나님을 울부짖는다. 놀라운 반전이다. 이것이 곧 신앙이다. 죽을 길에서 살 길을 찾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이때 죽을 병까지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개인적 죽음’과 ‘국가적 죽음’을 모두 어깨에 짊어지고, 그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참회하였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묻는다. 이사야 이름은 ‘구원’의 뜻이다.
산헤립은 20만 대군으로 예루살렘을 포위했고, 구원의 길은 없었다. 미군부대가 오듯 이집트에서 군대를 파견해줄 수가 없었다. 안시성 전투처럼 히스기야는 그대로 전멸할 수 밖에 없었다. 엘리사 시대에도 동일한 일이 있었다. 아람군대(벤하닷)가 침공해서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포위당했고, 물가가 폭등했다. 그때 엘리사의 예언을 통해 아람군대가 갑자기 철수한 사건이 있었다. 거의 흡사하다. 단지, 엘리사의 은혜를 받은 요하람은 회개하지 못했다. 이후, 엘리사는 예후를 지명해서 군사혁명을 일으켰고, 요하람을 폐위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서 오는가?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5달란트와 2달란트와 1달란트를 받은 종들이 나온다. 1달란트는 3억원이다. 15억원과 6억원과 3억원의 투자금을 받은 종들의 이야기다. 달란트는 곧 은혜다. 은혜는 어디서 오는가? 요하람이 받은 은혜는 수백 달란트에 해당한다. 히스기야가 받은 은혜도 동일하다. 개인적 죽음과 국가적 멸망이 연장되었으니, 하나님의 크신 은혜는 무엇으로 비교할 수 없다.
히스기야는 엄청난 은혜를 맛보고, 15년의 수명이 연장되었고, 국가는 점점 부강해졌다. 그때 교만이 싹튼다. 므낫세는 왕세자 자격이 없었는데, 그래서 이사야는 므낫세의 왕세자 자격론을 직언했지만, 그것을 무시했다. 므낫세는 왕이 된 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켜서 죽였다. 이사야를 톱으로 썰어서 죽였는데, 결국 남유다 왕국이 톱으로 썰어졌다. 므낫세는 55년이나 다스렸다. 남유다 왕중에서 가장 악한 왕인데, 55년이나 호위호식했다. 누구의 눈물과 재단으로 그렇게 했을까?
결국, 당세만 보는 자는 근시안적 사고에 갇힌 자이다. 미래를 내다봐야한다. 최소한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서, 씨앗을 뿌려야한다. 씨앗을 먹으면 안된다. 씨앗을 뿌린다는 것은 후진양성이다. 모든 단체, 모든 종교, 모든 국가는 인재양성으로 좌우되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그래서 왕세자 교육을 위해서 충신을 선별해서 특별과외를 시켰다. 만약, 히스기야가 이사야를 므낫세의 스승으로 지명했으면, 남유다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