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취재가 있어서 잠시 까페에 머무른다. 나는 습관적으로 콘센트가 있는 테이블을 찾고, 와이파이 ID와 비밀번호를 확인한다. 대부분, 영수증에 적혀 있지만, 간혹 벽에 붙어 있기도 하다. 이곳은 cafe12pm ID와 22222222이 비밀번호다. 비밀번호가 참 쉽다. 입력했더니, 와이파이가 풀린다.
십자가는 구원의 열쇠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집이니, 하나님께서 비밀번호를 설정한다. 자물쇠도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관리하신다. 자신이 원하는 열쇠로 하나님의 집을 열려면, 열리지 않는다. 만약, 자신이 원하는 열쇠로 하나님의 나라가 열렸다면, 그 사람은 강도요, 절도요, 도둑놈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열쇠로만 열린다. 그 열쇠를 허락된 자들에게 주어진다. 그것이 곧 십자가이다.
가장 극적인 비밀은 “우리가 만났던 그곳에서”로 정의된다. 녹두꽃에서도 일본군이 궁궐을 점령하자, 흥선대원군이 전봉준의 전령에게 “그때 만났던 나루터에서 보세”라고 암호를 설정한다. 이러한 암호는 그 당사자만 알게 된다. 십자가는 이러한 암호가 설정된 구원의 비밀번호요, 신비다. 이스라엘의 시작점은 아브라함이고, 이삭이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는데, 그 약속의 결과가 이삭이다. 이삭은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쳐졌다. 그것이 십자가 사건의 신비다.
내가 있는 까페에 내 집의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넣으면, 풀릴까? 아무리 좋은 비밀번호를 입력해도, 결코 해제되지 않는다. 여기는 2를 8번 입력해야 와이파이가 된다. 그 집의 비밀번호는 그 집 주인이 결정한다. 천국의 비밀번호는 하나님께서 결정한다. 그 암호는 성경속에 있는 것이지, 정감록이나 세상의 전설에 있지 않다. 속으면 안된다.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유명하거나 무명하거나, 권력을 가졌거나 압제를 받거나, 그것은 배경과 환경이다. 자색옷 부자가 지옥에 간 것은 부유해서가 아니다. 거지 나사로가 천국에 간 것은 가난해서가 아니다. 부유함 때문에 TV출연과 사업이 잘되다보니 교회에 갈 시간이 없어서 하나님을 잃었기에 지옥에 간 것이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고, 돈과 부귀와 명예가 우상처럼 군림하니, 어디에 가겠는가.
거지 나사로는 가난해도 하나님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개들이 아픈 곳을 핥았다고 하니, 거지 나사로는 개들에게도 하나님의 복음을 외쳤을 수도 있다. 거지 나사로가 천국에 간 것은 하나님을 마음에 품었기 때문이다. 부유함보다 가난함이 하나님을 찾는데 더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삭개오는 부유함속에서도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았다. 부유함과 가난함이 구원의 절대적 지표는 아니다. 구원의 비밀번호는 오직 십자가이다. 그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