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장은 2명의 유대인이 나온다. 바울은 2분법을 제시하면서, 제3의 인물을 창조한다. 제3의 인물이 그리스도인이다.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나눈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이방인’의 개념을 창조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제시한다. 이것이 이면적 유대인이다.
갈라디아서는 노골적으로 말한다.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갈5:2) 율법의 상속이 ‘할례’에 있지 않고, ‘세례와 성령’에 있다.
나는 세례명 이름이 “누가”다. 성경적 소명이 담긴 이름이다. “누가창성”은 소명과 축복이 함께 들어있다. 이사야 51장을 근거해서 목사님이 성령의 영감으로 내게 주신 이름이다. 누가 누가인가? 누가 창성인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라다운 나라’는 어디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라다운 나라’이며, 아담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람다운 사람’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마음을 드러냈다. 침묵의 하나님이 아니다. 마음은 말로 드러난다.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드러났다. 말씀하신 하나님이다. 그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행하는 자가 ‘사람’이다.
누가 마가인가? 누가 마태인가? 누가 요한인가? 누가 베드로인가? 누가 바울인가? 누가 디모데인가? 누가 나사로인가? 누가 과연 그러한가? 내가 이단교회를 떠났던 결정적 이유는 ‘성경’이다. 그들은 성경을 읽지 않는다.
마치, 아론이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춤’을 추듯…. 그 황금송아지가 아피스를 닮았다. 그들이 춤을 출 때, 모세는 율법을 받고 있었다. 십자가의 피흘림으로 약속받은 성경말씀이 지금도 살아있는데, 어찌 말씀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가? 말씀을 벗어난 모든 종교단체는 물을 떠난 고기처럼 죽는다. 고래도 죽는다. 물은 곧 생명수 말씀이다.
2016년~2017년 즈음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때, 그들은 예수님과 완전히 결별했다. 성자 예수를 성자와 예수로 나누면서, 결별했다. 오!! 어리석도다!! 성자 예수를 성자와 예수로 나누다니!! 그렇다면, 소월 김정식은 ‘소월’과 ‘김정식’의 두 인물인가? 대한민국은 ‘대한’과 ‘민국’의 두 인물인가? 대통령 문재인은 ‘대통령’과 ‘문재인’의 두 인물인가?
성자 예수를 ‘성자’와 ‘예수’로 나눈 그것이 틀렸다. 그것을 나눌 때, 나눈 그 사람이 벨사살 왕처럼 ‘죽음’을 맞았다. 정녕코 그러하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미 떠났으나, 성자예수를 ‘성자’와 ‘예수’로 나눴을 때, 이미 끝났다. 예수님을 판단한 그것이 자신의 사명을 판단한 것이다. 나는 그들을 떠났더니, 성경과 가까워졌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들이 성경과 얼마나 멀어졌는지, 확연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