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로마서 13장 1절을 “진리의 명령”으로 지키는 현대 기독교인이 얼마나 될까?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와 지금은 사회제도가 달라져서, 말씀도 달라졌다”고 주장하면, 성경말씀의 권위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성경말씀은 폐할 수 없다.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각 사람들은 복종하고, 순종해야한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막가파 판사를 괴롭힌 막가파 과부의 비유를 들었을까? 그 과부가 지혜로웠던 것은 “자주” “노골적으로” 판사의 권위를 건드린 것이다. 그때, 판사는 “양심의 빛”이 비치면서, 제정신을 차려서 자신의 권세로서 과부의 편이 되었다. 하물며, 하나님이시랴!!
기독교인에게는 “정치혁명”이 금지된다. 하나님께서 허락할 때는 특별한 정치 사명자에게 그 권세가 주어지면서, 행하실 뿐이다. 사람들을 규합해서, 동학혁명을 일이키듯이 체제를 전복하는 것은 “믿는 성도의 사명”이 아니다. 성도들은 교회를 지켜야지, 세상권력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세상’을 다스린다.
바울의 선언문은 명확하다.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다. 모든 권세들을 정하신 분이 곧 하나님이니, 바울이 세상 권세들을 임명한 것이다. “권세들”은 하나님께서 정했으니,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복종하는 것이 옳다.
이런 정신이 ‘다니엘 정신’이다. 다니엘은 세상 권세들에게 비굴하게 굴종하지 않고, 스스로 복종했다. “복종”의 의미가 “비굴하게 굽히는 행위”의 개념이 강하지만, 바울은 각 사람에게 스스로 권세들에 복종하도록 요청한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장관-도지사-구청장-동장-통장-반장”의 행정관료 시스템처럼, 하나님-그리스도-교회-대통령-장관-도지사-구청장-동장-통장-반장의 순서로서 권세의 질서가 정해졌다. “세상권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하면, 그 기도가 “신문고”가 되어서 권세들의 질서를 하나님께서 재조정하실 것이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하면서, 위에 있는 교황의 권세에 복종했다. 그는 교황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벨론의 다니엘이여!!”라고 존경하면서, 천주교의 개혁을 촉구했다. 다윗도 끝까지 사울의 왕권을 인정했다.
기독교인들이 “정치의 참정권”을 주장하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더 큰 인사권(人事權)으로서 ‘제사장의 직분’을 주셨는데, 제사장의 직분으로 세상 권세들이 정해지는 것인데, 혹시 교회가 세상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세상의 머리다. 그것을 믿는다면, 하나님께 순복함으로 세상권력을 인정하되, 부당한 것에 대해서는 기도함으로 세상을 다스려야한다. 과연, 그러한가? (정치를 욕하는 것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