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사도를 파송하면서, 주님은 “두려워 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영화가 있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 참새가 떨어져 추락하는 것은 그 합당한 이유가 있고,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다. 추락하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욥이 추락해서 고난에 빠진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은 로마권력의 앞잡이들이다. 짐승의 권력에 속해서, 성도들에게 겁을 주는 자들이다. 그들은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그 영혼까지 능히 지옥불에 던져, 멸할 수 있는 자를 두려워해야한다.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며, “우리 아버지”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씩 둘씩 파송했다. 참새 두 마리는 두명씩 짝을 이룬 제자들을 상징한다. 12명의 사도들과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참새떼보다 귀한 자들”로서 축복하신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아들이 아버지를 두려워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교육을 받은 아들조차 아버지를 두렵게 대하지는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사랑이다.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주신 ‘평안의 말씀’이면서, 참새떼처럼 작은 제자들을 향한 ‘담대의 말씀’이다. 제자들은 작은 소리로 짐승의 권력을 향해 외칠 것이다.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짐승의 권력이 두려워해야할 상대는 참새같은 제자들이다. 주님은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자”라고 말씀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된 권능이다.
누구든지 주님을 사람들앞에서 시인하면, 주님도 내 아버지앞에서 그를 시인하고, 부인하면 주님도 부인한다. 참새같은 제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시인한다면, 이제 두려움은 역전된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돌진했더니, 돌맹이 하나에 ‘성령의 엔진’이 장착되면서 골리앗의 이마를 향해 총알처럼 날아가서 박혔다. 하나님의 이름을 시인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시인하면, 누구든지 성령의 능력을 받고 말의 권능이 임한다. 말한 그대로 이뤄진다.
**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는 것은 머리 한올까지 하나님의 것으로 택했다는 의미다. 주님을 믿으면, 머리 한올까지도 주님의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믿는 성도를 보호하고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