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침(蜂針) 약침(藥針)
나는 30년 냉동인간에서 깨어났다. 나를 흔들어 깨운 이가 누구인가? 생기를 불어 넣으신 근본자가 누구인가? 나의 세례명은 ‘장누가’다. 세례받을 때, 예수님이 감동으로 그 이름을 불렀다고 목사님이 말씀했다. 나는 “아멘!!”했다. 어느날, 꿈속에서,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 나를 향해 이름을 불렀는데, “누가야”라고 했다. 나는 나를 인식하길, ‘장창훈’으로 알고 있는데, “누가야”라는 그 말에 반응하면서 대답하였다. 그것을 꿈에서 인식하였다. 오!! ‘누가’를 부른 그 여인은 누구인가?
나는 가끔 피곤하면, 한의원에 간다. 그곳에는 다양한 바늘들이 존재한다. “침”이다. 봉침과 약침이 효과가 좋다. 모든 침들은 짧은데, 머리에 꽂을 때와 배에 꽂을 때는 ‘대침’을 사용한다. 대침을 꽂을 때는 한의사가 상당히 긴장한다. 한의사가 긴장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길 ‘한의사가 긴장한다’고 느껴진다. 전문가는 긴장이 없다. 툭, 꽂으면, 쑥 들어갔다가 치료가 된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는데, 그때 비둘기가 하늘에서 내려왔어요. 홍수심판이 끝나고 비둘기가 날아갔죠? 성경은 단순히 하나의 사건만을 말하지 않아요. 홍수심판의 비둘기는 창세기 1:2에 수면위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말해요”
1년전, 수요예배때 들었던 말씀이다. 마태복음 3장을 놓고, 이렇게 확실히 강해하신 것은 처음이다. 말이 글보다 위대한 것은 ‘언어의 힘’에 있다. 말은 현재적이며, 강력하다. 글은 수명이 길지만, 작가의 실제 목소리는 들어가지 못한다. 독자의 음성으로 바뀌어서 읽힌다. 말은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실린다. 복음을 외치는 모든 교사는 ‘복음의 원음’을 노래하는 ‘가수’와 같다. 악보는 동일하고, 그것을 어떻게 부르느냐로 명곡이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
마태복음 3장을 강해한 그 설교를 듣고, 나는 그날 ‘결단력’이 생겼다. 왜냐면, 기존에 알던 것과 확실히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주면, 사람들은 보다 좋은 것을 선택한다. 진리는 영원하고, 그 무엇보다 새로운 것이다. 십자가 진리가 특히 그렇고, 성경말씀이 또한 그렇다. 성경말씀을 외면하고, 세상 것을 진리로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몰라서 그런 것이다.
나의 경우, 성경말씀의 은혜를 받고서, 기존에 알던 것들은 ‘노예문서’로 취급해서, 성령께서 불태워버렸다. ‘하늘신부’를 만들어주겠다면서, ‘성약성’의 감옥에 영혼을 가뒀고, 그 창살을 벗어나는 자가 드물었다. 율법적 종교가 갖는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 잠언(箴言)은 바늘 잠, 말씀 언. 잠언을 읽는 자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을 갖게 된다. 건강한 영혼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다시 갖게 된다. 그것은 창조적 상상력이다.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것!! 그것이 건강한 영혼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사람의 마음은 금방 병들고 지친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말씀, 잠언을 통해 마음을 새롭게 해야한다. 수지침처럼 스스로 침을 꽂거나, 말씀묵상을 통해, 예배를 통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영혼의 건강을 날마다 새롭게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