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모세 작가는 요한복음 15:2 “제거하다”는 의미를 ‘번역의 오류’로 지적했다.
(열린다 성경 p116) 왜 영어성경과 우리말 성경은 이 부분에서 오역(誤譯)을 한 것일까? 이는 ‘제거해 버리다’에 해당되는 헬라어 원어 속에 그 해답이 있다. 헬라어 ‘아이로’는 ‘제거해버리다’와 ‘들어주다’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중략) 번역상의 오류가 말씀을 전혀 다른 의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데 있다. 땅바닥에 닿아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를 ‘제거해 버린다’고 해석하면, 무시무시한 심판으로 이해되지만, ‘들어 주신다’고 해석하면, 연약한 우리들을 위로해 주시는 놀라운 권면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열린다 성경에서 매우 인상깊었던 대목이다. ‘내게 붙어 있어’가 요한복음 15장의 주제이고, 첫 문장에서도 ‘내게 붙어있어’가 나온다. 그런데, 붙어있는 가지중에서 열매를 맺지 않으면, 그것을 제거해 버리신다면, 가지는 어떻게 열매를 맺어야하나? 열매를 맺으려고 가지는 나무에 붙었는데,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때 농부는 가지를 제거한다면, 가지는 어디서 영양분을 의지하는가?
공동번역은 “모조리 쳐내시고”이다.
새번역은 “다 잘라버리시고”이다.
현대인의 성경도 “모두 잘라내시고”이다.
나는 헬라어 ‘아이로’의 또 다른 뜻인 ‘들어주다’를 채택해서, 인자하고 자애로운 사랑의 농부로 믿는다. 설령, 내가 열매를 맺지 못해도, 가지를 들어올려서 땅에서 멀어지게 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다. 나의 하나님은 기다리고, 인내하고, 품어주는 농부이시다. 만약,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잘라 버린다면, 성도는 ‘열매맺기’의 율법적 조건쌓기에 몰입한다.
그런데, 주님은 분명히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주님께 붙어있으면, 주님께서 가지를 통해서 열매를 맺으신다. 어떤 가지는 아직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것은 땅에 너무 붙어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살짝 들어올려서 땅과 떨어지면, 그 가지도 조만간 열매를 맺을 것이다.
내가 주님안에, 주님께서 내안에 살고 계심을 믿는다. 그래서, 어떤 일이 때론 하고싶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주님께서 그것을 하고싶지 않도록 마음을 주셨다고 믿는다. 의무로 어떤 일을 하면, 결국 끝이 좋지 않았다. 열매를 여는 것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음으로 이뤄지는 결과다.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믿고, 말씀에 의지해서 살면, 성령은 자신도 모르게 내면에서 살고 계신다. 성령의 열매는 성도가 주님의 포도나무에 붙어있음으로 얻어지는 열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