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점점점 양처럼 약해지는가? 순해지는 것 같다. 기자로서 칼날을 세우다가도 성경말씀에 “칼을 칼집에 넣어라”는 말씀이 자꾸 생각난다. 그때마다 비난의 펜을 내려놓는다. 그것이 옳다. 살다보면, 모욕을 받는 때가 많다. 그때는 누가복음 6:28이 생각난다.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라”
“기사를 내려줘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문장이다. 옛날에는 결코 기사를 내리지 않는다. 요즘은 기사를 내린다. 내리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내 기사가 세상속에서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단지, 기사를 내리면 상대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고, 내 마음의 칼날도 내려놓는 것이다. 기사를 잘 썼든, 못 썼든, 그것과 상관없다. 모욕적인 일은 자주 당한다. 그것이 사람의 일이다. 모욕적인 일을 어떻게 감당하고, 인내하면서 살아내느냐가 관건이다. 뺨을 맞으면, 다른 뺨도 돌려댈 정도로 당당함을 가지라. 인생은 어차피 모욕과 환란속에 살아갈 일이다.
왜 뺨을 돌려대라고 했을까? 뺨을 맞으면 마음이 상한다. 그러나, 다른 뺨도 때리라고 허락하면,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마음이 꺽이면 모든 것이 꺽인다. 마음을 담대하게 하라는 뜻이다. 맞을 짓을 해서 맞은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을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왜 때려!”라고 대항하면, 마음이 상한다. 맞을 짓을 하지 않았다는데 맞았다고 생각이 들면 억울함이 치솟고 마음이 다치게 된다. 마음에 평안을 얻게 하려면, 뺨을 돌려대야한다. 그때, 상대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뺨을 돌려대면, 상대는 때리지 않는다. 상대는 오히려 뺨을 때린 것을 뉘우칠 확률이 높다. 진심은 진심으로 통하는 법이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눅6:36)
자비(慈悲)는 종교를 초월해서 사람이 가져야할 근본 마음가짐이다. 뺨을 돌려대는 것은 맞을지라도 적대감과 보복심을 갖지 말고 용서하라는 것이다. 용서가 곧 자비로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