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길 특명전권 대사(前)가 용인 정평중학교 꿈펼동아리를 방문해서, ‘외교관이 되는 길’에 대해서 알기쉽게 설명했다. 미래 외교관 및 국제전문가가 될 학생들은 노트에 필기까지 하면서 배상길 대사(前)의 강의에 몰입했다. 배상길 대사는 UN 반기문 사무총장과 함께 외교부활동을 했던 인물로서, 개인적 친분이 두텁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외교부에서 실력을 쌓고, 김영삼 정부시절 특명대사로 파견됐다. 지금은 한국유엔협회감사로서 인재양성을 위해 ‘강연활동과 집필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배상길 대사는 “지금은 지구촌 시대로서, 용인정평중학교 학생들은 용인시의 학생들과 경쟁해서는 안되고, 한국의 학생들과 경쟁하는 것도 너무 협소하고, 전세계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경쟁하는 글로벌 안목(眼目)을 가져야한다”고 설명했다.
배상길 대사는 “과거와 다르게 인터넷이 발달해서 지구촌 모든 곳의 소식을 1초만에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비행기를 통해 하루만에 전세계에 갈 수 있으며, 금융의 흐름은 1조달러가 1초만에 움직이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했다.
외교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한 경력에서 나오는 경험지식은 그 자체가 ‘귀한 보물’과 같았고, 학생들은 정평중학교 작은 공간에 있지만, 전세계를 이해하려는 ‘넓은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교육의 힘은 학생들에게 ‘인식의 새로운 눈’을 뜨게 한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의 주인들이 함께 형제처럼 손을 맞잡는 것입니다”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 나의 4명의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하는 것입니다.”
– 마틴 루터 킹의 꿈
배상길 대사가 마틴 루터킹의 꿈에 대해서 잔잔한 목소리로 설명하자, 용인 정평중학교 꿈펼 동아리 회원들은 마음이 벌써 숙연해진다. ‘꿈’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전세계의 공동체와 연결될 때 ‘명분과 거룩함’이 묻어난다는 ‘힘’을 느끼는 듯 했다. 링컨의 연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연설 등등 배상길 대사가 전해주는 내용들은 본인이 실제로 만났거나 ‘같은 길을 걸었던 세계적 지도자’들이어서, 학생들에게 호소력이 짙었다.
“대사는 높거나 낮거나, 대접을 받거나 그렇지 않거나 어느 곳에 있어도 대통령을 대신해서 국가를 대표하는 역할입니다. 본인의 취향대로 살 수가 없고, 오직 국가를 대표해서 처신을 바르게 해야하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모든 업무를 수행해야합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사가 옷을 이상케 입으면 국가가 망신을 당하게 됩니다. 외교관을 일컫길, ‘총없는 전쟁터에서 미소뒤에 칼이 숨어있다’라고 표현합니다. 웃고 싶지 않은 사람과 웃으면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함께 만찬을 하면서 대화를 나눠야하는 직업이 바로 외교관이고, 대사입니다.” / 배상길 前대사
신라가 통일하게 된 결정적 이유도 알고보면 ‘김춘추’의 외교관 역할덕분이다. 당나라의 국방력을 끌어드려서 백제와 고구려를 물리치고, 삼국을 통일한 것은 신라의 외교력덕분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해외 파병과 같은 것이며, 6.25 사변이 터졌을 때 UN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펼쳐서 서울수복을 했다. 이 또한 외교력의 힘이다. 서희의 담판을 비롯해서 역사속에 수많은 외교협상이 존재한다. 배상길 대사와 수많은 외교관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이 높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배상길 대사는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상당히 불우했다. 당시는 모두가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중학교를 간다는 것이 특별하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때이다. 노력하고, 몰입하고, 집중하고, 간절히 원하는 열정덕분에 공부는 누구보다 잘했던 배상길 대사는 중학교 진학에 막혔다. 중학교에 간절히 가고싶었으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때 ‘마라톤’으로 길이 열렸다. 마라톤이 특기였던 배상길 대사에게 ‘마라톤 출전’으로 중학교에 가는 길이 주어졌고,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특별한 방법이 없자,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무작정 상경했으나, 경무대(청와대)에서 막혔다고 한다. 그때부터 신문배달을 하면서 열심히 청춘을 불태웠다.
배상길 대사는 말한다.
“프랑스에 가면 에펠탑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관광명소이고, 에펠탑을 보려고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습니다. 철골 건축물이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에펠탑이 처음 세워졌을 때는 그당시 세계적 문호 모파상까지 싫어했습니다. 모파상은 에펠탑이 싫어서 에펠탑이 안보이는 에펠탑 1층에서 식사를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에펠탑은 건축당시 고물처럼 무시당했지만 지금은 세계적 보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꿈도 크고 웅장하게, 현실적으로 가지시고, 그 꿈을 성장시켜서 변화시키길 바랍니다. 누가 뭐라해도 본인의 꿈은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