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발행인 칼럼]=정권은 탄핵됐고, 세월호는 인양중이다. 묘한 엇갈림은 밀물과 썰물이 서로 바톤을 이어받듯, 누군가 리모콘을 조정한다는 느낌이 들지만, 3년만에 이뤄지는 인양작업인 것을 볼 때, 세월호를 둘러싼 국민의 참정권이 이뤄낸 인내의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나는 팽목항에 가본 적은 없지만, 대신에 촛불집회와 탄기국 집회에 참석한 적은 있다.
“감기는 치료불가능하다”는 의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국제사회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지만, IS는 바이러스처럼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존재일까? 바이러스의 위협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권력의 독점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에서 보여줬던 그 침묵의 정보들이 마치 세월호 인양에서 떠오르는 느낌이다. 박근혜 前대통령의 탄핵사건의 옳음과 그름의 명제를 떠나서, 박 대통령 스스로 진실성의 입장에서 보다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법률적 관계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개인의 자격으로서 마땅하겠지만, 사람의 심리가 작동하는 법적 체계에서 결국 불리한 판단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처럼, 3년전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서 보다 빠르게, 바르게, 적극적으로 해당 사실의 진실을 인양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3년동안 묻혔던 것은 과연 세월호일까? 그 은유적 상징성은 각 학자마다 업계마다 분야마다 해석이 각각이겠지만, 세월호에서 시작된 그 긴 몸부림은 국민의 권력이 국민에게 속해있음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기간이었다. 또 누군가 대통령의 권좌에 앉겠지만, 지금의 체계에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날지는 미지수이지만, 과연 대통령 1인이 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대통령은 단지 대통령일 뿐이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정치변화의 급물살이 될 것이다. 어쩌면, 박정희 前 대통령이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 군사 구데타로 정권을 찬탈해 질서를 확립했다고 하지만, 그당시 참정권이 민주주의로서 새롭게 부활했더라면, 아마도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더욱 새로운 사회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역사의 가정법은 무익하지만, 혼란이 혼란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님을 말하고자 한다.
촛불집회와 탄기국 집회는 극단적 대립관계를 유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국론분열이라고만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세월호처럼 국론은 이미 분열되었고, 세월호가 수면위로 인양되듯이 광화문 광장에 오랫동안 잠재된 대한민국의 민심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지 않을까? 이것은 누가 조장한 것도 아니고, 내면의 진실이 탄핵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다. 니클라스 루만의 체계이론 설명처럼 모든 것은 우연의 집합이겠지만, 그 결과는 운명처럼 겸허히 받아드려야할 것이다.
나는 탄기국 집회에 참여하면서, 보다 젊은 층으로서 혹여 촛불집회 참여자로 오인(誤認)받지 않으려고 과목한 표정으로 묵묵히 걸었다. 다행히 어르신들의 몰매는 맞지 않았고, 든든한 격려의 눈빛이 느껴졌다. 당시 나는 어르신들은 돈을 받고 집단적으로 동원된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없지 않았다. 날씨도 춥고, 힘겨운데, 지방에서 왜 올라와서 생고생을 하는가? 정치적 이권은 없을 것인데, 그렇다면 경제적 이권이 걸려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탄핵이 인용(認容)되고 할머니들의 독립적인 정치표현은 명확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너무 가혹하다”와 “형사소송이 진행도 안됐는데 탄핵이 인용된 것은 법률위반이다”와 “왜 탄핵은 재심이 없는가”라면서 울부짖었다. 그 슬픔은 감정과 논리가 함께 섞인 애절함이었다. 돈을 받고 집회에 참석했다면 그런 진실한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스스로 판단한 정치이념에 따라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받은 사람으로서 당혹감이 역력했다. 촛불집회처럼 탄기국 어르신들도 결국 참정권이 실행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폐쇄적 정치보수는 이제 국민을 향해 문을 열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이 된 것이다. 비밀(秘密)의 시대는 쇄국정책(鎖國政策)과 같은 굳건한 통제주의다. 그런 정치는 국민의 신망(信望)을 받을 수 없음이 이번 세월호~탄핵까지 증명된 것이라고 본다.
세월호 침몰 당시 어떠했나? 충분히 살릴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오지 못한채 갇혀서 304명이 수장(水葬)됐다. 3년 내도록 세월호 사건은 7시간 행방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을 괴롭혔고, 급기야 탄핵사건 인용문에도 세월호 사건이 기록으로 남았다. 아이들은 그저 시키는데로 했을 뿐인데, 어떻게 되었는가? 시키는데로 하는 것이 옳지 않음은 이미 입증되었다. 국민 스스로 자신의 촛불을 들고, 자신의 태극기를 들고서 정치에 대해 참정권을 행사하면서 갇혀진 정치 시스템을 두드려야한다. 세월호 사건은 ‘폐쇄성의 몰락’을 상징한다.
실상, 박근혜 대통령도 탄핵사건이 터지면서, 청와대號에 갇혀서 꼼짝을 하지 못하고 탄핵이 인용되자 비로서 그곳을 나올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변호인단의 요청에 따라 한 것인데, 결국 탄핵의 침몰을 당했다.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최순실의 측근이 하자고 한 대로 했을 뿐인데 결국 탄핵의 침몰을 당했다. 차라리 국회에 직접 가서,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고, 나아가 국론분열 방지목적으로 자신의 애절함을 탄원하고, 바로 근처에 위치한 헌법재판소에 참석해서 마음에 호소를 했더라면 3명의 판사가 마음을 돌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에 탔던 그 학생들처럼 기회조차 박탈당했음을 뒤늦게 점검해본다. 이제는 자신의 기회는 자신이 점검하면서 입장을 표명하고, 설령 그결과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나올지라도 억울하지는 않는 법이다.
진보측, 보수측, 어느 분야에서 대통령이 나올지, 귀추(歸趨)가 주목(注目)된다. 누가 되더라도 산적한 문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적폐청산(積弊淸算)의 대상과 방향이 약간씩 달라질 뿐, 결국 정치권과 기득권의 새로운 변화가 없다면 국론분열의 치료약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한다. 내치(內治)를 통한 외치(外治)에 성공하는 차기정권이 탄생해서, 조작과 음모는 일찌감치 실종되고 새로운 투명성의 정치제도가 마련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