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성 서울교육방송 한문학 교수가 독립선언서를 한문으로 직접 적은 기록물을 펼쳐보이고 있다.
[인물초대석, 이병성 한문학 교수 / 서울교육방송]=3월 25일 서울교육방송은 이병성 한문학 교수(서울교육방송)를 직접 만나, 인물초대석을 진행했다. 대한민국은 현재 교육의 중대한 기로(岐路)이 놓였다. 아쉽지만 초등학생 교과서에 300글자 기본한자가 병기되고, 한문과 역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한문에 대한 딜레마에 빠진 것이 사실이다. 한문은 해야하는데, 반드시 해야하는가? 또는 한문을 배우면서 한글처럼 쉽게 배울수는 없는가? 한문학습에 대한 욕구 증대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교육 시장도 요구되면서 교육계는 마땅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한문학습의 병목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서울교육방송은 14년 넘게 한자학습과 한자형성의 구조와 체계에 대해 연구하고, 강연을 하면서 학생과 학부모, 일반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병성 한문학 교수를 만나, 한자학습의 비법을 들어봤다.
이병성 교수는 ‘이선생의 어문해석 자원한자’ 책을 꺼내놨다. 이병성 교수가 10년간 연구한 결과가 한권으로 묶여 세상에 출현한 것은 2012년이다. 기존에 수많은 한자해석 책들이 있지만, 기존의 것과 분명한 차별을 이룬다. 이 책에는 ‘바탕글자’ 620글자를 수면위로 끌어냈고, 바탕글자를 중심으로 엮인 한자가족들을 쉽게 풀이한 한자형성 구조와 체계를 재정립한 한문학의 보고(寶庫)이다.
“한문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형성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원해석을 억지 춘향격으로 풀이하다보니, 의미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한문이 어렵게 느껴진 것이죠. 한문은 알고보면 인류의 오랜 경험과 문화와 역사와 지혜와 생활과 정치가 화석처럼 녹아진 것으로서, 한문을 교육하는 사람은 한문속에 담긴 글자의 의미를 통해서 교육생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합니다. 한문속에 담긴 깊은 뜻을 제대로 알려면 형성원리를 구성하는 부수글자에 대해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래 부수글자는 군대조직의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과 같은 개념입니다. 어떤 부수글자는 10개의 글자를 거느리고, 또 어떤 글자는 300개의 글자를 거느립니다. 허신은 부수글자를 540개로 분류했는데, 청나라때 강희자전이 만들어지면서 부수글자가 214개로 축소되었습니다. 군대조직으로 보자면, 부대가 합병되었다는 것인데, 이때부터 한자의 부수해석이 헤깔리기 시작합니다. 가령, 겸할 겸(兼)은 벼 화(禾)가 2개 있고, 오른손 우(又)가 합쳐진 글자인데, 부수글자는 여덟 팔(八)에 분류되어 있습니다. 여덟 팔(八)은 이 글자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부수글자는 거느린 글자의 부모와 같고, 통솔자와 같고, 대표성이 있는데, 여덟 팔(八)로 겸할 겸(兼)이 해석되지 않습니다. 최소한 벼 화(禾) 또는 오른 손 우(又)에 속해야할 글자인데, 부수글자가 축소되면서 이런 모순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허신이 구축한 부수글자 540개와 새롭게 형성된 부수글자를 찾아내서 총 620개의 바탕글자를 간추려서 바탕글자를 통한 한자학습서를 출간하게 된 것입니다.”
이병성 교수는 강단에서 ‘열정적 청년’으로 평가받는다.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던 1947년에 출생했던 인물로서, 올해로 꼬박 71세의 연세를 지나고 있지만, 이병성 교수의 한자학 열정은 멈춤을 모른다. 한번 이 교수에게 강의를 들은 사람은 이병서 교수의 한자해석의 비법을 연마하게 된다. 그 방법대로 하면, 한자들이 굴비처럼 일관되게 꿰어지면서, 전체의 맥락을 통해서 새로운 한자체계가 완성될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생활의 지혜들이 빛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한자가 마치 ‘집밥처럼’ 맛있음을 모두 알게 되니, 바탕글자를 선호하게 된다.
인터뷰 도중에, 왕십리(往十里)의 왕(往)이 평소 궁금했던 터라, 물었다. 왕(往)은 본래 척(彳)과 왕(王)의 합성인데, 주(主)로 잘못 표기된 것이 아닌지, ‘왕’으로 발음되는 것을 볼 때, 그렇지 않은지 질문했더니, 이병성 교수의 대답은 예상밖이다.
“발음이 ‘왕’이니, ‘왕’으로 발음되는 글자가 들어있는 것은 맞죠. 그러나, 임금 왕(王)은 전혀 아닙니다. 한자학습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보여지는 것을 보여지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특히 왕(王)이 그렇습니다. 왕(王)이 보이면, 구슬 옥(玉)과 무성할 왕(㞷)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합니다. 대부분, 구슬 옥, 아니면 무성할 왕입니다. 왕(往)은 무성할 왕(㞷)의 축약형이 쓰여서, 주(主)처럼 보여진 것입니다. 걸음을 왕성하게 걸으니, 갈 왕(往)입니다. 가령, 윤달 윤(閏)은 임금이 문안에 있다고 해서,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윤달 윤(閏)으로 해석하는데, 본질을 따지면 구슬 옥(玉)이 맞습니다. 윤(閏)의 본래 뜻은 윤택할 윤(閏)입니다. 문안에 옥(玉)이 있으니 윤택한 것이죠. 요즘 시대로 말하면 집안에 자동차도 있고, 명품가방도 있고, 풍요롭다면 윤택한 것이죠. 그런데, 윤달에는 왕이 종묘사직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왕이 궁궐에서 나가지 않고, 몸과 마음을 삼가면서 지냈던 기간이 윤달기간입니다. 윤(閏)과 그 의미가 연결되다보니, 윤(閏)에 윤달 윤의 의미가 새롭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글자가 윤택할 윤(潤)입니다. 윤(潤)을 윤달의 물줄기로 해석하는 것은 어원을 너무 모르는 자의적 해석입니다. 옥구슬로 해석해야만 그 의미가 깨달아집니다.”
이병성 교수는 명령 령(令)을 통해 한자형성의 근원을 설명했다.
“한자해석에 있어서 또한 신경써야할 것이 있다면, 휴머니즘에 대한 것입니다. 본래 한자는 휴머니즘과 백성에 대한 무한한 인정과 사랑이 담긴 글자입니다. 사람에 대한 긍휼과 공동체, 자애로운 철학이 한자속에 담겨있는데, 통치자들이 한자를 사용하면서 한자해석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측면이 많습니다. 한자는 절대로 군림하거나, 명령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령(令)을 모든 사람이 모여서(亼) 무릎을 꿇게 한다(卩)로 해석합니다. 그렇게 설명하면 그런 것 같지만, 본질은 아닙니다. 무릎을 꿇는 주체가 바로 임금입니다. 임금앞에 백성들이 무릎을 꿇어야하다는 한자해석은 통치자들이 섞은 해석일 뿐, 령(令)이 만들어진 근본은 임금이 하늘앞에 천명(天命)을 받들기 위해 스스로 무릎을 낮춘 모습입니다. 명령권자는 바로 하늘입니다. 신의 명령을 따르기 위한 왕의 낮아짐이 바로 령(令)입니다. 령(令)처럼 지배하는 의미로서 한자가 해석되는 경우, 대부분 인문적 해석이 첨가된 경우가 많다고 봐야합니다. 군림하고, 지배하고, 통제하고, 억압하는 그런 의미는 한자의 근본과 거리가 멀다고 보면 됩니다.”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言竟漢今 등에 대해서도 기존과 전혀 다른 색다른 해석, 또한 바탕글자를 통해서 묶음 한자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신비한 의미해석이 진행됐다.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이병성 교수의 한자해석은 앞으로 서울교육방송과 함께 교육칼럼으로 연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