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말로 지지않는 학생은 토론의 실패자다. 말싸움에서 이겼고, 토론에서 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토론은 말싸움이 아니다. 토론(討論)에서 토(討)가 ‘토벌과 죽임과 전쟁’이 뜻이 있고, TV에서 보여지는 토론문화가 상대의 허점을 공격하는 것이라서 대부분 토론은 말로 이겨야한다고 인식한다. TV의 토론은 ‘토론의 형식’일 뿐, ‘연설 또는 소송’과 흡사하다. 선거토론회는 한쪽이 져야 한쪽이 이기는 정쟁(政爭)의 한복판이다.
학교에 토론문화가 정착하려면, 토론의 인식관부터 변경해야한다. 잘못 알고있는 토론문화가 머릿속에 있으면, 북쪽을 남쪽으로 알고서 길을 걷는 것과 같고, 5호선 지하철 왕십리에서 마천행을 탈 사람이 김포행을 타는 것과 같다. 인식은 행동의 방향을 결정한다. 토론에 대한 인식이 말싸움으로 설정된 학생은 말싸움의 자세로 토론에 임할 것이니, 그 학생은 토론의 자세를 가다듬어야한다. 영어를 배우는 학생이 N과 M을 거꾸로 알고서 N을 ‘엠’, M을 ‘엔’이라고 발음한다면 영어를 가르쳐서는 안된다. 알파벳을 다시 교정하고 영어를 알려줘야한다.
토론은 의사소통으로 이뤄진다. 의사소통(意思疏通)은 생각과 뜻을 서로 주고받는 과정이다. 의사소통의 매체는 대부분 언어로 이뤄진다. 몸짓과 눈빛과 표정과 침묵도 소통매체로 활용되지만, 의사표현의 주된 내용은 언어로 전달된다. 의사소통의 목적은 내용의 전달과 관계형성이다. 친목단체에서 공지사항을 전달하는데, 그것은 내용전달이 주된 목적이다. 그 외 대부분은 관계형성을 목적으로 의사소통이 진행된다. 처음 만난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는 개인적 신변 이야기는 피하면서 날씨와 평범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서로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탐색 목적이 짙다. 의사소통은 관계형성과 내용전달이 주된 목적이다. 어떤 단체에서 회원들을 모아놓고 20분동안 회장연설이 폭포처럼 쏟아졌다고 하자. 그 연설이 끝나고 회원들은 억지로 박수를 쳤다. 박수를 치면서 마음은 등을 돌린다. 웃지만 쓴 웃음이다. 이러한 의사소통은 내용전달 목적은 달성했지만 관계목적은 실패한 것이다.
의사소통은 쌍방향이다. 대화는 보통 2사람이 참여한다. 유대인의 대화습관중에 하브루타가 있다. 하브루타도 상호존중을 기본으로 하는 대화토론법이다. 어려서 몸에 체득된 그들의 토론방식은 정보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상대와 자신의 의견차이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대화는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고, 의견의 불일치로 차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 공감대를 형성할 때는 의견의 확장이 발생하고, 차이가 발견되면 의견의 조정이 일어난다. 대화식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견의 불일치’에서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다. 다름은 서로의 변화로 이어진다.
토론도 대화와 같다. 대화가 바탕인 토론은 절차가 보다 엄격하다. 들음과 말함의 순서와 시간이 주어진다. 귀와 입이 모두 참여해야 토론은 활발하게 진행된다. 대화는 박수와 같아서 한쪽만 말하면 불이 붙지 않는다. 한쪽에서 말하면 그 말에 반응해야 대화가 활활 타오른다. 토론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의견에 귀기울여야 자신의 의견에 상대도 귀기울인다. 들음과 말함은 같은 비중으로 진행되어야한다. 들음의 목적은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들음은 자신의 의견과 어떻게 다른지 차이를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르고, 다른 이유는 무엇이며, 상대에게 다름의 차이를 설명할 논리를 어떻게 세울지 그것을 고민해야한다. 같음과 다름을 구분하면서 ‘같음’은 인정해줌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고, ‘다름’은 적절한 논리를 펼치면서 상대가 반감을 갖지 않도록 신중해야한다. 토론이 끝나더라도 친구는 옆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토론의 목적은 관계형성과 의사전달의 2가지 목적이 있음을 인지해야한다. 토론은 토론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토론하면서 마음이 상할 수도 있다. 운동하면서 친구와 심하게 부딪히면 우정에 금이 갈 수도 있다. 같은 맥락이다.
토론은 ‘인성과 지성’의 두 손을 가지고 있다. 지성은 논증하고, 인성은 배려한다. 토론문화가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지 못하면 자신도 존중받지 못한다. 자기 의견이 중요하면 상대 의견도 중요하다. 상대를 무시하면 상대도 무시한다. 토론이 폭언의 인신공격 무대가 될 수도 있다. 말은 칼과 같아서 날카로운 단어로 상대를 공격하면 마음이 치명상을 입게 된다. 들음이 말함보다 중요하다는 인식관을 가져야 ‘공격적 토론문화’를 줄일 수 있다.
토론의 목적은 설득(說得)이다. 설득(說得)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세찬 바람은 나그네의 모자를 벗기지 못했는데, 부드러운 햇살은 나그네의 모자와 옷까지 벗게 했다는 이솝우화가 있다. 부드러운 햇살이 설득의 묘책이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상대가 거만하면 그 의견을 따르지 않는다. 억지로 강요하면 억지로 수긍할 뿐 비밀투표를 한다면 강한 반대에 표를 던질 것이다. 논리와 감정은 서로 독립적이다. 자기주장이 옳다고 강하게 발언하면서 상대를 비난하면, 그 사람은 사람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사람을 잃으면 상대는 동의하지 못한다. 토론에서 이기려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주입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상대방의 의견을 자세히 듣고 인정할 것을 인정하면서 부드러운 대화법으로 마음을 얻어야한다. 마음을 얻으면 상대도 옳은 의견에 옳다고 인정해준다. 토론은 상대가 자신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같음과 차이’를 발견하는 인성훈련교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