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에세이]=성큼성큼, 여름이 왔다. 바람은 나무의 볼을 스치고, 나의 걸음은 오늘도 교회를 향했다. 시원한 물줄기는 내 마음의 계곡으로 스미고, 주일(主日)은 나와 주의 만남, 단상은 말씀의 강줄기다. 교회(交會)가 ‘사교의 만남’인 것은 사람과 하나님의 만남을 상징한다. 또한 성도(聖徒)의 상호 교통(交通)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말씀으로 친목이 잔잔하다.
교회문화도 시대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옛날엔 폐쇄적이었다면 지금은 보다 개방적이다. 열린 예배가 유행하고, ‘열림’은 보다 자유로운 문화를 뜻한다. 세대와 세대를 초월하여 전통과 현대가 결합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열린 예배’가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교회에 성도의 대화공간이 만들어지는 ‘문화까페 신설’은 앞선 선견지명이라 여겨진다. 오늘 나는 까페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것은 ‘성큼성큼’ 다가온 여름처럼 반가웠다.
까페에 나는 자주 간다. 가서 음료를 마시지만, 그건 목적이 아니다. 음료를 통해 까페의 문화를 만끽하고, 그 문화를 통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혹은 기사를 쓰는 업무를 수행하거나, 피로를 풀기 위해서 잠시 독서를 하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설레임으로 그곳에 머문다. 까페는 문화를 담는 그릇과 같아서, 상징성의 뜻이 크다. 모세는 시내산의 가시떨기밭, 그 척박한 곳에서 하나님의 호출을 받았고, 베드로는 거친 바닷가에서 그물을 깁다가 예수님의 호출을 받았다. 편안한 까페에서 하나님의 호출을 받았다는 성경은 없지만, 그 시대는 그 시대이고, 지금은 지금일 것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사귐은 하나님을 통해 성도들의 상호교통으로 이어진다. 나는 최소한 그것을 신뢰한다. 교회마다 까페를 만드는 주된 목적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일 것이다. 내가 사는 장안평에도 까페가 상당히 많다. 까페는 음료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다. 음료를 통해 대화를 즐기기 위해서이다. 대화는 곧 소통이다. 말의 매체를 활용한 마음의 연결이 곧 소통의 본질이다. 까페는 2개의 소리가 존재한다. 하나는 음악소리, 다른 하나는 고객의 대화소리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을 따라 손님들의 대화는 새소리처럼 평온하다. 까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문화수준이 향상되었다는 간접 증거일 것이다. 밥만 먹고 살아야 했던 척박함이 이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대화를 통해 사연을 나누고, 의미를 해석하면서, 상대 말에 귀기울여 경청할 정도로 문화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내가 잘 아는 분이 새로 생길 ‘교회 까페’를 준비하고 있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눌 마음의 공간을 준비한다는 것은 교회속에 교회를 만드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다. 매실청(梅實淸) 과실청(果實淸) 건강음료와 브런치가 준비된다고 한다. 푸른 여름, 상큼한 과실맛이 벌써 향기를 돋군다. 다음주 즈음 까페가 만들어지면, 시원함을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