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 램지가 쓴 초코홀릭 책을 읽고 있다. 한국쇼콜라티에협회 홍보위원으로 위촉됐으니, 더 이상 코코아빈을 ‘콩’과 비유해서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 코코아빈(또는 카카오콩)은 재배과정과 발효과정이 콩이 메주가 되는 것과 결코 다르지는 않지만, 일반인들이 접하는 초콜릿과 메주는 전혀 다르다. 우리 조상들이 메주를 대충 만들지 않고 예술적 감각으로 모양을 빚으면서 천장 대신 무대를 마련해 햇빛에 말렸더라면, 메주가 초콜릿처럼 귀한 대접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초콜릿은 금수저 음식, 메주는 흙수저 음식인 것은 사실이다.
돔 램지는 초콜릿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린다. 그 중 눈길을 끄는 정의가 있다. 우수한 코코아콩 선별기준이다. 1)코코아콩 품질 2)향미 3)지속가능성이다. 코코아빈 자체의 품질, 수확해서 발현되는 향미, 그 코코아빈이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있는지, 3가지는 반드시 충족되어야할 기준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을 자주 한다. 인성(人性)은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성향이다. ‘나’와 ‘너’를 연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다. 내가 나를 인식하는 것이 자아정체성이다. 이후 ‘상대’에 대해 인식하면서, 서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친밀집단의 공동체이다. 보통 인성을 ‘착한 마음, 좋은 인품’으로 생각하지만, 인성의 근본은 사람과 사람의 어울림이다. 먼저는 ‘나와 너’의 어울림, 둘째는 ‘나와 공동체’의 어울림, 셋째는 ‘나와 환경’의 어울림이다. 나와 애완견(犬)의 관계도 인성에 해당한다. 자신과 관계를 맺는 모든 것이 인성이다. 이후 ‘나와 나’의 관계는 성찰로서 ‘깊은 인성’의 단계이다.
돔 램지가 정의한 좋은 코코아콩 선별기준 3가지가 인성과 흡사하다. 코코아콩 품질이 좋다는 것은 사람의 품성이 좋다는 것과 연결된다. 향미가 좋다는 것은 사람의 언어와 행동이다. 욕을 하는 사람은 욕이 속에 가득차 있어서 그렇다. 좋은 말을 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코코아콩도 벌레가 먹거나 깨진 것은 가공과정에서 제거된다. 좋은 사람은 말과 행동을 통해서 발현된다. 지속가능성은 ‘꾸준한 습관과 인내력’에 해당된다. 사람의 마음은 기복이 심하지만, 변하지 않는 철학과 소신, 가치관과 추구하는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 철학이 시시각각 변한다면, 그 사람은 ‘시시각각 변하는 철학’을 가진 것이고, 소신없는 사람으로 평가받게 된다.
언젠가 초콜릿에 대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다면 나는 돔 램지의 코코아콩 선별기준 3가지를 설명하고, 다음 2가지를 묻고 싶다.
1) 학생이 생각하는 좋은 코코아콩, 또는 좋은 초콜릿 선별기준 3가지는 무엇인가요?
2) 학생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선별기준 3가지는 무엇인가요? (학생은 어떤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나요?)
나는 신의 음식이라 불린 초콜릿을 좋아한다. ‘초콜릿’의 언어가 좋았고, ‘초콜릿’으로 인연이 되어 만난 한국쇼콜라티에협회 김성미 회장과 직원들이 모두 좋았다. 모두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때론 쓰디쓴 냉철함과 비판적 사고가 있었고, 초콜릿처럼 친화력이 강했다.
초콜릿은 고향이 아마존 열대우림이다. 한국의 장마철, 고온다습한 기후가 카카오나무의 최적 조건이다. 한국 사람이 살기에 부적절한 끈적끈적하고 후덥지근한 날씨가 카카오나무가 살기 좋은 날씨다. 그 초콜릿이 임진왜란이 발생했던 1590년 경, 유럽의 콜럼버스가 아스텍문명을 완전히 박멸하고 그 전리품으로 가지고 온 것이 카카오빈이라고 한다. 이후 초콜릿은 설탕을 만나 달콤한 음식으로 왕족과 귀족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음료수로서. 1847년 영국에서 프라이 앤 선즈가 몰드에 넣어 고체 초콜릿을 만들어, 음료수에서 과자로 초콜릿의 이미지를 바꿨다. 유럽이 제 2의 고향인 초콜릿이 그 모양까지 변화했으니, 혁신과 변화의 주인공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런 초콜릿이 좋다. 초콜릿은 자신의 본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재료를 만나면 친밀감있게 융합해서 어울리는 새로운 초콜릿 제품을 만들어낸다. 나도 이런 초콜릿 사람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