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가장 좋아했던 한자는?
어질 인(仁)이다.
얼마나 좋아했으면 자신의 모든 사상을 압축한 글자로 ‘仁’으로 정의했겠는가? 춘추전국시대의 모든 문제들의 해결정책으로 ‘仁’을 내세웠으니, 전쟁과 다툼과 불만족의 사회현상을 없애는데는 ‘仁’이 특효약임에 틀림없다. 최소한 ‘공자의 약국’에서는.
나는 ‘信’을 가장 좋아한다. 내 나이 44. ‘信’의 뜻을 이루려고 내 삶의 울타리를 형성해왔다. 믿음이란 다양한 형상과 얼굴과 모습을 띄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믿음은 어떤 막연함보다는 구체적이다.
信과 仁은 닮았다. 좌측에는 人이 있고, 각각 우측에는 言과 二가 존재한다. 한자의 결합원리로 본다면 2개의 글자가 화학식처럼 합쳐져서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이다. 소금+물=소금물, 김+밥=김밥처럼 2개가 합쳐져서 새로운 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한자는 한글과 달라서 ‘결합의 창조’가 탁월하다.
信은 사람과 말씀이 합쳐졌다. 말씀을 지키는 사람을 일컬어 믿음의 사람이라고 한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은 “말씀을 지키지 않고 가르치는 교사는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홍수때 무너지고, 말씀을 지키면서 교육하는 교사는 반석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홍수때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 홍수는 ‘언론보도 혹은 특별감사, 청문회’ 등으로 이해하면 ‘말씀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국민검사, 모래시계 검사로 알려진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검찰조사를 앞두고 있다. 이 또한 ‘信’의 검증절차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가 평소 자신의 말한 대로 자신이 살아왔다면 믿음의 사람이니, 검찰수사의 대홍수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반대라면 결과가 증명할 것 같다.
信은 곧 신뢰다. 신뢰의 기준은 명예, 권력, 돈, 미모, 가문, 학벌 등등이 아니다. 믿음의 기준, 신뢰의 기준은 ‘言’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보고서 판단한다. 그렇지 않은가? 정치인의 달변을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을 보고서, 그 말이 그대로 지켜지면 우리는 그 사람을 신뢰한다. 약속이행이 그래서 정말로 중요하다. 말을 해놓고 그 말대로 안하면 그가 세종대왕이라고 해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므로’ 신뢰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이처럼 약속을 지키는 것은 ‘믿음의 척도’이다.
말을 잘하는 것은 신뢰와 아무 상관이 없다. 말만 잘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誘’에 해당한다. 말씀 언(言)과 빼어날 수(秀)가 합쳐졌다. 빼어나게 말을 잘한다는 의미이다. ‘웅변할 유’의 의미가 될 것 같은데, ‘아니다’. 이 글자는 사기칠 유(誘), 유혹할 유(誘)이다. 말을 그럴듯하게 잘하면서 그 말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의 말은 늘 조심해야한다. 말(言)은 반드시 지켜질 때 그 효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계약서가 존재하고, 계약서에 적힌 글을 토대로 약속을 이해하도록 늘 쌍방은 서로를 구속한다. 그러나, 약속 잘키는 사람과 구두계약이 약속 안지키는 사람과 공증문서보다 낫다. 약속은 문서가 지키지 않고, 사람이 지키기 때문이다. 작은 약속이라도 지키는 사람과만 투자를 하고 신뢰의 관계를 형성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仁은 두 사람을 의미한다. 물론 二를 해석함에 있어서 ‘하늘과 땅’으로 할 수도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어서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仁’이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나는 ‘두 사람’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은 ‘어진 마음’이다고 해석한다. 仁은 인간관계를 의미한다. 어질다는 것은 착하다는 것이고, 착하다는 것은 딱풀처럼 서로 잘 붙는 것을 말한다. ‘붙는 것’은 곧 붙임성이다.
소셜(social)이 잘되려면 동글동글해야한다. 仁이 바로 그런 것이다. ‘나와 너’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진 마음’이다. 어진 마음이 있어야만 처음 만난 사람과도 친근해지면서 서로 호감이 가고 또 만나고 싶어하고, 자주 만나다보면 서로 약속도 하게 되고, 약속이 지켜지면 그때 ‘信’이 쌓여가는 것이다. 결국 仁도 信도 사람과 사람사이에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비밀을 말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