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콜릿을 통해 혁신의 가치를 깨닫는다. 사람이 먹는 초콜릿의 고향은 본래 아마존 정글이었다. 카카오 나무는 그곳에 태어나, 콜럼버스 탐험가를 만나기 전까지 평온하게 살았었다. ‘신들의 음식’이란 금수저 대접을 받으면서, 아즈텍 문명의 귀족 음식이었다. 음료수로서. 지금은 멸종위기에 놓인 크리욜로종이 만들어낸 짙은 향미 음료였을 것이다.
‘쓴 물’을 뜻하는 초콜릿이 ‘단 맛’의 상징이 된 것은 순전히 유럽인들의 입 맛덕분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은 인류 공통의 음식문화일 것이다. 사탕수수를 만난 초콜릿은 달콤함으로 변화했다. 그렇다고 쓴 맛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쓴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첨가하듯.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라고 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고사성어에 의지해서, 쓴 약을 인내롭게 먹어야 했다. 쓴 약이 단 약으로 변화하면 얼마나 좋을까? ‘양약고어구’는 곧 ‘조언과 충언’이며, 멘토링과 같다. 비판의 날카로움은 뒷맛이 작열이다. 쓴 맛이다. 단 맛은 칭찬과 격려다. 쓴 초콜릿이 단 맛을 합성하자, 많은 사람이 즐기는 음식이 되었듯, 사람이 사람을 교육할 때는 비판과 칭찬의 언어문화는 동시에 필요하다.
초콜릿이 음료에서 먹는 음식으로 탈바꿈한 것은 반호텐 덕분이다. 반호텐이 압착기술을 이용해서 카카오콩에서 카카오버터를 분리해 카카오 가루를 만들었고, 이후 프라이 앤 선즈가 몰드를 이용해 지금 우리가 먹는 판 초콜릿을 최초로 선보였다. 이때가 1847년이다.
한민족이 삼국에서 고려로, 조선으로, 대한민국으로 변화하듯, 초콜릿은 카카오의 본질을 내면에 간직하면서, 유럽과 아시아를 여행하며 다양한 변화를 거듭했다. 본연의 쓴맛을 간직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맛의 옷을 즐겨 입었고, 음료의 형태에서 음식으로 기꺼이 혁신했다. 형식은 변했으나 카카오의 본질은 그대로 유지했다. 본질은 위대한 생물학자 린네가 붙인 학명, ‘테오브로마 카카오’(신들의 음식 카카오)가 말해주듯, 품격있는 음식을 의미한다.
초콜릿은 ‘테오브로마 카카오’의 학명이 그 역사를 대변한다. 카카오는 고향 아즈텍 문명에서 불린 고유 이름이고, 테오브로마는 아즈텍 문명에서 했던 역할인데, ‘그리스어’로 붙여졌다. 얼마나 절묘한가? 테오브로마는 ‘신들의 음식’이지만, ‘귀하고 품격있는’의 수식어로 대체된다.
변화를 지향하고, 변질을 두려워해야한다. 초콜릿의 역사가 이 명언과 연결된다. 초콜릿은 그 본질, 카카오콩의 품격있는 향미와 쓴 맛을 항상 유지하면서, 본질의 유지를 통해 변질을 두려워했고, 다른 재료와 문화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변화를 받아드렸다. ‘본질+변화’가 만들어낸 지금의 초콜릿을 먹으면서, 사람은 자아정체성의 본질과 다양한 문화를 향한 배움의 변화를 동시에 진행하는 존재임을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