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에서 고향에 다녀왔다. 나의 고향은 고흥, 10초만에 SNS열차로 도착한 나의 고향 어머니의 목소리는 대학시절 여름방학때 고향대문을 열 때 뛰어나오시며 “창훈이냐? 아이구 내새끼 어서 온나? 밥 아직 안먹었제. 진작 차려났다. 어서 들어가자”고 반기시던 그 목소리가 여전하시다.
자식을 돌보는 어머니들의 마음은 모두가 같은 것이다. 나는 나의 어린시절이 기억나지 않지만 나의 어머니는 나의 기억 이상으로 나를 기억하실 것이고, 마냥 철없게 웃는 아이들을 볼때면 어머니의 존재가 더욱 위대해진다. 어머니가 없다면 아이도 없을 것이므로. 나의 어머니는 고향 고흥에서 ‘시니어 골프’로 건강관리를 하면서 활력넘치는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
엊그제, 중국에서 막 도착한 정지윤 명지대 국제교류경영학 교수님의 인연으로 강의를 하게 된 한일문화원 시니어 SNS특강이 머릿속에 생생하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6.25와 1970년 새마을 운동, 민주화운동, 급격한 한강의 기적속에 경제강국의 한국을 경험하면서도 정작 손에 있는 핸드폰은 전화기 정도였다. 마음이 무척 아팠다.
나는 한일문화원 강의를 정말로 많이 준비했었다. PPT를 직접 만들었다가, 혼자서 목청을 높이면서 ‘효’의 의미와 결부시켜 SNS를 해석하고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PPT를 야물지게 준비했다.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라고 스스로 점검했다. 마이크까지 우렁차게 잘 나왔고, 정지윤 교수님도 중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당일날 함께 했다.
퍼펙트(perfect)는 아마도 이런 데 쓰는 것이 아닐까? 나는 속으로 매우 흐믓한 표정을 지었고, 강사소개후 내가 넙죽 인사를 했더니 모이신 분들이 환호성을 보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내가 분명,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말했는데, 모두 할머니들만 계셨다. 남녀비율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사뭇 물음표가 던져지면서도 다시 ‘할머니 여러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홀로 사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혹은 시간이 모두 다르니까 다양한 사연들이 있으실 것이다. 모이신 모든 분들의 표정이 밝다는 것, 그게 참 좋았다.
‘효(孝)’를 ‘할머니 등 긁어주는 손자’로서 ‘효자손’이라고 설명하자, 할머니들은 쉽게 이해를 하셨고, 소셜로서 소통하는 것이 ‘효’라고 다시 설명하고, 본격적으로 세련된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손자앞에서 카카오톡을 할 줄 알아야한다고 강조, 강조, 강조를 하고 스마트폰 실습 교육을 바로 진행했다.
“자, 스마트폰 모두 들어보세요. 스마트폰은 똑똑한 핸드폰입니다. 바탕화면에 이것 보이시죠”
할머니 한분이 뭔가 묻고 싶어하신다. 가서 봤더니, “폴더폰”이었다. 폴더폰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나도 헤깔려서 5분 정도 헤매다가 기다리시는 할머니분들을 생각해서 다시 진도를 나갔다.
“여기 제 전화번호 보이시죠? 전화번호를 입력할 때는 ‘장창훈’ 이름만 입력하지 마시고, 장창훈 서울교육방송 보도국장 SNS 전문가 이렇게 길게 입력해 주세요. 그래야 찾기가 쉽거든요”
나는 정말로 설명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모두 나를 가만히 쳐다보신다. 이런 물음이다.
“전화번호를 어떻게 입력해?”
1주일 동안 내가 준비했던 시니어 SNS특강은 여기서 충격적 현실을 직면하게 됐다. 지금의 한국이 있게한 기성세대들이 핸드폰조차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과거 흔적의 유산인양 여전히 전화기로만 스마트폰을 쓰는 현실을 보면서, 시니어 SNS 특강을 다시 준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