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를 무척 좋아하는 나는 ‘뻬리에’가 여기에 있음을 오늘 알았다. 스타벅스 직원조차 “뻬리에 주세요”라는 말이 약간 낯선 듯 했다. 즐겨찾는 제품은 아닌 듯, 선미라 파리대학 기호학 박사가 좋아하는 음료중에 하나가 ‘뻬리에’이다. 뻬리에는 탄산이 약간 섞여있는 파리산 음료수이다. 황실에서 즐겨먹는다고 한다.
우리의 약속은 몇 번 겉돌았다. 비가 몹시 오는 날 ‘번개처럼’ 잡았던 약속은 헝클어졌고, 오늘도 서로의 약속은 본래 맞지 않았으나, 선미라 박사는 시간을 당기고, 나는 늦춰서 오후 4시 즈음 장한평역 3번출구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유럽 파리에서 날아온 선미라 박사는 ‘기호학’ 전문가이며, ‘문화소셜 전문가’이다.
선 박사는 ‘뻬리에’ 다음으로 ‘순례’라는 단어를 꺼내놨다. 단지 내가 ‘순례자’라는 책에 무척 감명을 받았던 덕분에 그녀의 말을 결코 가로막지 않고 즐겨 들었다. ‘순례’와 ‘기호’의 공통분모를 찾을 때까지 인내롭게 적으면서 버텼다.
문화탐방은 매우 익숙하다. 한국사회에 문화를 즐기고, 가이드가 경복궁을 소개하고, 사진을 촬영하고 기념사진과 함께 기념품을 하나씩 산 다음에 인증샷을 찍는 것이 우리가 즐기는 문화탐방의 기본 컨셉이다. 도대체 문화탐방과 순례가 어떻게 다른지, 그 형상이 쉽게 잡히지는 않았지만, 선미라 박사는 “순례를 해야만 인류공동체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류평화는 교과서에 등장했던 문장이므로, 희긔종을 본 듯 나는 선미라 박사의 인터뷰를 경청했다. 진귀한 보물을 보듯, 그녀가 꺼내놓은 단어의 논리적 전개는 신기한 학문의 박물관같았다.
처음 한자를 접했던 그 느낌이랄까? 사람과 말이 합쳐져서 ‘믿음’의 뜻이 된다는 그 해석을 처음 접했던 설레임처럼, 선미라 박사가 꺼내놓은 ‘순례’는 사실 ‘기호학’의 관문이었다. 내가 늘상 알고있던 단어의 문을 열면서 보여준 ‘기호학’의 세계는 결국 우주의 코드를 찾는 탐험자로서 ‘순례의 길’을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 순례는 바로 우리가 늘 알고 즐겨찾는 그 ‘마이웨이’를 말한다. 최소한 내가 느꼈던 선미라 박사의 순례길은 ‘마이 웨이’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문장을 요약문으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순례는 찾는 것이예요. 사람은 누구나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어요. 어머니의 영양분으로 편하게, 무상으로, 아무 댓가도 지불하지 않고서 살았죠. 그러다가 어느날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공간이탈을 경험하고, 모든 것이 주어졌던 뱃속에서 이제는 스스로 걸어가야하고, 말을 배워야하고, 적응하고 획득해야하는 세상의 공간을 살아가는 것을 알게 돼요. 고통이죠. 엄마 뱃속은 평화롭고 안전했는데, 세상은 투쟁과 노력의 전쟁 그 자체죠. 사회속에서 충돌의 고통을 겪으면서 인간은 수많은 갈등을 경험합니다. 이때 인간은 누구나 엄마의 뱃속, 씨앗의 위대한 공간을 그리워합니다. 순례는 바로 그 평화를 찾아 떠나는 성찰의 여행입니다. 그 공간이 고향이 될 수도 있고, 조상의 숨결이 숨어있는 문화유적지가 될 수도 있고, 유럽에 있는 콤포스텔라의 성스러운 성지가 될 수도 있고, 연인들이 즐겨찾는 여행지가 될 수도 있어요. 공간을 통해서 자신을 투영해서 자신을 찾는 것은 바로 ‘순례의 형상’입니다. 순례는 자기를 찾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탐방은 문화를 배우는 것이고, 순례는 그 문화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배우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바로 이 순례가 필요합니다.
뻬리에를 한모금도 마시지 않고서 문장을 계속 나열하는 동안, 선미라 박사는 “순례를 하면서 빵도 먹지 않고, 물만 조금씩 마시면서 고통을 통해서 남의 고통을 배우고, 정신이 육체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순례는 인성을 회복하는 가장 성스러운 발자취이다”고 말했다. 경험의 순례자가 되어서 선미라 박사는 ‘문화’와 ‘인류’가 어떠한 관계로 맺어져야하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선 박사는 우주와 자연과 인간은 일체이며, 대등한 관계라고 못을 박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이 뭐지 아세요? 바로 순례자가 되어서 순례자의 성스러운 길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길은 내면속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빛의 길이거든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