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 사건을 폭로하면서 시작된 전세계 미투운동의 연장선에서, 서지현 검사와 김지은 비서가 JTBC 뉴스룸에 직접 출석해, 한국판 미투운동의 증인이 되었다. 법무부를 상대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조직의 불법을 고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지현 검사의 경우 법을 집행하는 검찰의 권력을 상대하는 일이어서, 모든 것을 내걸고 그곳에 섰을 것이다. 중력을 벗어나는 탈출속도로 로켓이 발사되는 것보다 힘겨운 일일 것이다. 스스로 참회의 자리에서 자신을 정죄함으로 그들의 죄를 고발하는 자리이므로…..
충청권 유력 대선 주자 잠룡 안희정 충남지사의 성폭행 의혹을 폭로한 김지은 비서의 미투운동 사회고발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정치를 발칵 뒤집었다. 잠룡의 조명을 받던 안희정 지사는 이 사건으로 잡놈 욕을 먹을 정도로 추락했다. 비행기 추락처럼 탈출할 겨를도 없이 떨어졌다. 김지은 비서 역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공개하는 수모를 감당함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정도 쉽지 않고, 그 결정을 실행하는 것도 쉽지 않고, 공개석상에서 결정을 시인하는 것도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썩은 오물이 가득한데 뚜껑을 덮고 “쉬쉬쉬”하면서 비공개로 처리했던 지난 과거는 이제 끝난 것 같다. 서울시장 또는 권좌에 앉을 자들은 그들이 행한 모든 과거의 치부가 함께 수면위로 급부상하므로, 부끄러운 자회상을 직면한 채 뒤로 물러나는 정치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과거는 걸어온 길이어서 사라지지 않는다. 발자국은 보이지 않은 것 같아도 과거의 길에 모두 남아있고, 그것이 곧 자신이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부류를 ‘회칠한 무덤’이라고 했다. 쉬운 말로 “페인트칠한 무덤”이다. 왕릉속에 시체와 뼈가 가득하다. 겉으로는 간판을 내걸고 사회를 위한 정의실현을 외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썩은 시체, 뼈, 구더기, 악취, 음모, 갑질, 불법, 음란, 성폭행, 비겁, 뇌물, 비리 등이 가득하다. 범죄로 가득한 권력자인 셈이다. 미투운동은 집안을 청소하는 로봇 청소기처럼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진실의 증인이 된다는 것, 과연 어떤 것일까?
과거 19C 말, 프랑스에 드레피스 장교가 있었다. 그는 유대인 출신이다. 1894년 9월 프랑스 군대는 기밀문서 유출죄로 드레피스를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 기소, 종신형을 선고했다. 당시 검찰이 내세운 증거는 드레피스의 필체와 비슷한 명세서밖에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반유대주의 여론이 조성됐고, 드레피스는 범인이 되어야만 했고, 모든 언론이 드레피스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대중의 여론을 해소할 희생양으로 드레피스가 지목된 것이다. ‘악마의 섬’에 수감된 이후, 군사기밀을 유출한 진범 에스테라지가 잡혔고, 그는 자백까지 했다. 그런데 군사재판은 에스타리지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석방했다. 조직이 개인의 인권을 철저히 파멸시켰고, 마지막 부활의 실날같은 희망마저 꺽어버린 사건이다.
그때 에밀 졸라가 그 사건에 대해 펜을 들었다. 일간지 1면에 당시 프랑스 대통령 ‘에밀 리베에게’ 보내는 편지로 작성된 그 칼럼은 ‘나는 고발한다’로 시작한다. 당시 한국은 식민지 치하로 점점 기울던 조선말, 1898년 1월의 일이다.
에밀졸라는 일간지 ‘여명’에서 ‘나는 고발한다’는 큰 제목과 함께 “드레피스는 무죄이고, 진실을 외면하고 증거를 조작한 프랑스 군대는 범죄집단이며, 나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기를 거부하며,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보낼 모든 밤은 무고히 피흘린 영혼들로 가득찰 것이다”라고 썼다.
이 칼럼은 프랑스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고, 잠자던 시민의 의식을 깨웠다. 프랑스 사회는 보다 성숙의 길로 접어들었다. 진보와 보수로 여론이 나뉘면서 드레피스 사건은 재조명됐다. 에밀졸라는 ‘프랑스 군대 명예훼손죄’로 기소되어, 직영형과 벌금형을 선고받고 영국으로 망명했다. 드레피스는 재심판결이 받아드려져, 10년형으로 감형됐고, 여론이 다시 들끓지 프랑스 정부는 재심판결 10일후 사면조치했다. 수감생활 5년째였다.
진실을 지키려던 에밀졸라의 펜은 자신에게 상당한 손실을 가져오게 했다. 진실을 지킨다는 것은 달콤한 유익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억압과 강제와 타격과 공격을 겪어야한다. 폭풍속으로 돌진하는 것과 흡사하다. 에밀 졸라가 진실을 수호하려고 펜을 든 그 때로부터 그는 프랑스 군대로부터 압력, 프랑스 보수주의자로부터 위협, 프랑스로부터 추방, 자신을 지지하던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으나, 역사가 흐르면서 진실의 기록은 에밀 졸라를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문학인’으로 추앙한다. 진실을 지키는 것, 또는 진실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드레피스 사건처럼 사회를 대청소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나는 미투운동을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