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主日)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일예배에 다녀왔다. 나는 주마음 교회 소속이다. 오늘의 말씀 핵심은 ‘필요성의 깨달음’이다. 알아도 그것의 필요성을 모르면 행하지 않는다는 것. 교육의 효과는 체험과 행실에 있으므로, 행하게 하려면 ‘필요성’을 인식시켜야한다는 것이다. 요즘 학교마다 프로젝트 교육과 체험교육 및 토론교육이 활성화되고 있는데, 결국 스스로 행하는 행동학습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과거 주입식 교육이 효과를 본 때가 있었다. 조선시대 유교식 학습이다. 세종대왕은 집현전을 만들어서 한문과 대적할만한 한글을 창제하고서 중국의 공자와 대적할만한 해동공자를 찾았다고 한다. 그가 바로 5살 신동 김시습이다. 사서삼경을 비롯해서 지혜에 통달한 그 어린아이는 훗날 조선의 미래를 짊어지기 위해서 조선의 일류 학자들의 초특급 과외를 받게 되는데….. 세종대왕이 50세에 죽게 되고, 김시습의 나이 20살이 못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잊혀졌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정다운 스님에게 들었다. 조선시대 그 발상이 왕권체제로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학습임을 실감하는 일화였다. 세종대왕은 모든 백성이 학문을 하게 하려고 했다고 들었는데…… 귀족들이 가장 반발했던 대목이 또한 그 부분이라고 알고 있다.
김시습이 해동공자로 인정받았던 것은 세종대왕으로부터이다. 세종대왕이 죽고, 그는 해동공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묻혔다. 그가 해동공자이길 싫어하는 세력이 있었을 것이고, 단종이 죽고 세조가 정권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조판서로 추천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말못할 비화(秘話)가 많겠지만, 핵심은 ‘필요성에 대한 가치성’이다.
세조가 세종대왕처럼 해동공자의 필요성을 절절히 알았다면 기꺼이 김시습을 영의정(국무총리)에 임명했을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 시대가 그것을 원할 수 있을까? 정조도 노론에 반대하는 국무총리를 임명하려다가 운명을 달리했지 않았는가? 필요성은 이처럼 정말로 중요한 것 같다.
필요성(必要性)은 반드시 필(必 )과 중요할 요(要)와 성질 성(性)으로 되어있다. 필(必)은 심장이고, 요(要)는 여자의 허리를 말하고, 성(性)은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심장(心)으로서 물려받은 유전적 성향이다. 필요성은 곧 심장과 허리를 말한다. 사람의 지체중에 이처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물론 있다. 두뇌이다. 필요성(必要性)은 절대로 있어야만 하는 필수조건을 말한다. 모든 것들을 멈추고서 해야만 하는 바로 그것이 필요성이다. 스티븐 코비 박사가 9가지 성공한 습관들에서 이야기했던 주제에서 1사분면(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한 것)에 해당하는 영역을 말한다.
◆ 과연 그것이 필요한가? 필요하면 왜 필요한가?
나에겐 노트북이 절대로 필요하다. 누군가 나에게 뭔가 매우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 무엇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래서 해줬는데 해준 다음에는 그다지 의미가 없을 때가 많았다. 과연 무엇이 필요성인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나의 내면이다. 내가 과연 무엇을 바라보고 있고, 무엇을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나를 단속하거나 질서를 잡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 나는 주일을 맞이하여 취재활동이 몇 곳 있었으나, 가지 않았다. 앞으로도 취재활동은 자주 가지 않을 작정이다. 그 이유는 중요한 한 가지에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서울교육방송 본연의 업무와 내가 오랫동안 숙원했던 꿈의 실현을 위해서 매진해야겠다. 남의 꿈도 소중하지만, 나의 꿈과 내가 바라는 삶의 목표를 위해서 더더욱 노력해야겠다. 오늘 말씀을 듣고 내 삶의 나침반(가치관)을 영점조정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