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새로울 신(新)은 누구나 좋아한다. 매울 신(辛)은 신라면을 제외하고 누구나 싫어한다. 청량고추처럼 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톡 쏘는 혀끝의 그 고통은 고문(拷問)이다. 얼얼한 그 아픔, 매운 맛이다. 매운 맛은 ‘매’를 맞은 것과 같다. 매울 신(辛)은 단도(短刀)를 본뜬 상형글자이다. 위쪽이 손잡이, 밑은 칼날, 一은 칼자국이다. 큰 죄를 범하면 가족이 모두 형벌을 받았던 과거 왕권시대에 ‘妾’(첩)은 죄를 범한 여자였다. 얼굴에 문신 자국을 새겨서 집안의 심부름을 시켰던 것이다. 아내를 뜻하는 妻(처)와 妾(첩)은 위쪽이 전혀 다르다. 妻는 머리에 비녀를 꽂은 모양, 妾은 얼굴에 문신자국이 있는 모습이다.
새로움은 곧 괴로움을 통해서 가능하다. 新(신)은 [辛]이 발음기호다. 보통 新을 立木斤으로 해석한다. 서있는 나무를 도끼로 찍으면,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난다는 해석이다. 立木을 辛(신)과 연결해서 해석하면, 나무를 자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 斤이 더해진 것이다. 나무를 자르면, 과연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싹이 돋을 수 있을까? 나무는 베면, 그것으로 끝난다. 단지, 접붙임에서 나무는 새로운 가지를 뻗는 것이다. 新은 곧 접붙임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접(接)붙임은 첩(妾)처럼 얼굴에 문신을 새겨야한다. 전혀 새롭게 되는 것이다. 뿌리가 있는 나무와 접붙일 나무를 각각 잘라서 물관과 체관을 서로 연결해 묶으면, 하나로 일체되어서 가지 끝에 새로운 열매가 열린다. 돌포도가 거봉이 되듯 한다. 뿌리의 진액이 강하게 올라오므로, 광합성 작용이 달라지는 것이다. 흡수력을 높이고 강한 나무로 키우면서 열매는 접붙이는 나무의 종자로 열린다. 접을 붙이지 않으면 땡감, 접을 붙이면 궁감으로 차원이 달라진다. 평범한 백성이 궁궐에서 사는 궁녀(宮女)가 된다면 민간에서 살던 삶을 청산해야 가능하듯, 그러하다.
새로움은 핑크빛이 아니고, 핏빛이다. 예수님은 온 몸에 채찍과 흉터와 창자국과 십자가의 형틀을 새기면서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辛’(신)의 과정을 거쳐야한다. 괴로움을 지나서 새로운 문을 여는 것이다. 나무의 뿌리를 잘라내고, 새로운 나무에 접을 붙이듯 기존의 살았던 삶의 원뿌리를 잘라내고 그리스도에 접붙인다는 것은 처절한 단절(斷絶)의 통증이 따른다.
아브라함은 새로운 믿음의 문을 열었다. 자신은 고향 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낯선 타향 가나안으로 이사해서 정착했고, 노년에 얻은 이삭을 제물로 바쳤다. 이삭을 밧줄로 묶고 나무에 불을 붙여서 제물로 바치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은 지켜보았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자식을 버리는 고통이 3일 내도록 있었던 것이다. 이삭은 아버지의 칼끝에서 그 고통을 참아낸 것이다. 믿음의 초석은 그러한 고통을 통해서 새롭게 얻어진 것이다. 새로움은 핑크빛이 아니고 핏빛인 것이다.
[2018.5.2. 정명석 목사님 잠언 멘토링 6번]
<역사>도 ‘접붙이는 역사’다. <신약> 때는 ‘옛 시대 구약’을 자르고 ‘신약’을 접붙여야 ‘새 시대 신약역사에 접붙인 자’였다. <성약> 때는 ‘신약’을 자르고 ‘새 역사 성약역사’를 접붙여야 ‘새 시대 성약역사에 접붙인 자’다.
접붙임의 다른 말은 ‘십자가’이다. 새로움의 다른 말도 ‘십자가’이다. 태만은 곧 권태이며, 게으름이다. 새롭게 되려면, 대표선수가 되려면, 어둠속에서 새벽의 여명이 몸부림을 치듯이 자신을 이기는 일이다. 가위가 가지끝을 자르지 않으면 그 가지는 그대로 존재하고, 가지를 자르면 나무는 보다 새로워진다. 새치를 뽑으면 그만큼 머리는 손질되고 뽑지 않으면 머리는 그대로이다. 잔디밭 잡초도 동일하다. 생활속 자신의 모순도 그대로 두면 태만으로 남겨지고, 제거하면 새롭게 된다. 제거는 반드시 고통의 괴로움이 따른다.
중처럼 머리를 밀거나, 속세를 떠난다고 해서 정신의 새로움이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머리를 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머릿속 생각의 잡념을 미는 것이 중요하다. 속세를 떠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속세에서 자신의 습관을 잘라내고 조각하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생활속에서 가지치기하고, 만드는 것, 감정(感情)을 정(丁)으로 내리치면서 진리에 접붙이는 것이다.
新은 辛에 斤이 더해졌으니, 고통이 더 큰 것이다. 신제품(新製品)은 편하다. 그러나, 그 신제품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아픔과 고독이 있었겠는가? 인생도 신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최소 10년이 지나야 그 분야에서 제대로 정착하고, 새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한다. 국가는 100년을 내다보고 교육을 설계하고, 사람은 10년을 내다보고 자신을 설계하면서 꾸준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는 비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