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국제뉴스 / 장창훈]=8700만 정보유출 사건으로 페이스북의 신뢰도는 바닥까지 추락했다. 청바지를 즐겨입던 마크 저커버그가 정장차림으로 청문회에 출석하게 한 사건이기도 하다. 모든 세계를 실명(實名)으로 연결한 페이스북이 활동기록의 저장장치로 인해 낭패를 당한 사건이다. 이후 페이스북은 신뢰에 기반한 새로운 혁신을 제시했다. 문어발식 확장을 추구해온 페이스북이 신뢰를 기반으로 ‘정보의 가지치기’를 한 사건이며, 향후 소셜의 새로운 방향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
5월 1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 경영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F8)에서 “많은 인터넷 사이트가 쿠키를 수집하는데, 방문기록을 삭제할 수 있는 선택권을 네티즌에게 줘야한다”라고 발표했다. 웹사이트 방문기록 제어기능으로 ‘클리어 히스토리’가 출시된 것이다. 기록을 지우는 것, 그것이 클리어 히스토리이다. 쿠키는 웹사이트 방문기록을 자동적으로 남기는 것인데, 정보수집의 원천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큰 회사든, 작은 단체든, 빨간불이 들어오면 2가지 반응이 나온다. 하나는 빨간불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다른 하나는 빨간불에 따라서 자신을 고치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대체적으로 ‘빨간불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대처한다. 그것이 덮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갑질사건도 몇 년동안 진행되었으나 고쳐지지 않은 것이 이러한 관행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특히 친기업 귀족노조가 권력을 잡고 있어서, 경영진의 태만은 제어장치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제어장치가 없으면 언젠가 큰 사고가 난다.
반면, 마크 저커버그는 정보유출 사건을 계기로 180도 다른 결정을 내렸다. 페이스북이 그동안 추구했던 정책을 전면 수정한 것이다. 이 사건은 정보유출의 책임을 페이스북 자체로 돌리는 것이다. 악용한 제 3자 때문에 정보유출 문제가 발생했다고 변명하는 것이 아니다. 법적인 책임은 뒤로 하고, 향후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정책을 변경한 것이다. 그것이 쿠키 삭제인 것이다.
쿠키는 방문기록과 같다. 오프라인에서 방문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정보의 통합과정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온라인에서 쿠키 정보는 빅데이터로 묶여 버린다. 나는 까페를 자주 다닌다. 내가 다니는 까페와 식당과 상품의 정보가 만약 온라인으로 묶여서 통계자료로 활용된다면, 나에 대한 생활패턴이 노출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내가 어떤 정치성향이고, 종교가 무엇이고, 전문분야는 무엇이며, 각종 데이터가 공개되는 것이다. 이는 내부정보로서 비공개 대상인 사생활이다. 온라인에서 쿠키 정보가 사생활 노출의 단서가 된 것이다. 페이스북은 그러한 쿠키를 수집하지 않도록 모든 정책을 변경했다. 한국기업들이 배워야할 경영철학이지 않을까?
불같은 성격의 나는 젊은 시절 불의(不義)를 참지 못하였다. 그때는 옳지 않은 것을 목격하면, 반드시 지적하고, 용납하지 못하였다. 그때 내가 배운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면, 문제를 지적한 사람을 문제시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후 나는 나의 모순을 고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언젠가, 내가 젊은 날 지적했던 그 사람을 멀리서 본 적이 있다. 10년이 흘렀는데도 그 사람은 과거의 모습에서 전혀 바뀌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바뀌지 않는구나’라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의 나는 불의를 보더라도 내면으로 삼키고, 그 사건을 거울로 나를 비쳐서 나의 모순을 고친다. 결국, 나의 변화가 내 삶에 윤택함을 주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의 결정을 보면서,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위대한 철학을 뉴스로 접하면서, 책임의 가치를 다시 깨닫는다.
세계적 관광명소 월명동에서 내가 본 의미있는 사건중 하나는 ‘작은 나무의 가지치기’ 사건이었다. 정명석 목사님은 돌조경 건축가로도 유명한다. 4월 27일, 자연성전 현판석 옆에 멈추시더니, 측근을 통해 가위를 가져오게 했다. 나는 멀리서 그것을 지켜봤다. 자연성전 우측의 작은 나무였는데, 상당히 곱게 생겼다. 다른 조경 전문가도 함께 있었다. 그 조경 전문가를 통해 가지치기의 방향을 설명하니, 밑에서 3~4개를 툭툭 잘랐다. “아깝다…”라고 여겨질 정도로 가지가 잘려 나갔다. 이후, 정명석 목사님은 직접 그 나무로 다가서서, 전체 나뭇가지의 50%를 없애 버렸다. 그제서야 새로운 형상이 나타났다. 형상을 만든다는 것, 그것은 버림의 과정이다. 그때 확연히 알았다. 장발(長髮)을 치니, 단발(短髮)이 되었고, 그 나무가 볼수록 아름답게 보였다. 세련미가 흘렀다. 자연성전 현판석 옆에 있는 그 나무가 머리손질을 하니, 현판석도 깔끔하게 보였다. 그 사건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마크 저커버그가 쿠키 삭제 정책을 공표하듯, 정명석 목사님이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함으로 나무의 디자인을 새롭게 하듯,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버림의 가지치기로서 세련미를 완성할 수 있다. 세련미는 ‘버림’으로 ‘형상’을 갖춘다는 것,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많은 일을 하고 싶지만, 가장 중요한 몇가지 일에 몰입하여 삶의 가지치기를 진행중이다. 말그대로 혁신(革新)이다.
동물의 가죽을 벗기듯(革),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듯(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