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사람은 습관적으로 비교한다. 그랜져를 탐으로 남과 경제적 비교를 하고, 아파트 입주를 통해 남과 윤택함을 비교하고, 직장과 대학을 남과 비교함으로 사회적 직위를 따진다. 비교는 맹점이다. 내가 남보다 더 낫다면 우쭐해지고, 교만의 위험에 빠진다. 나보다 못한 남을 비하(卑下)하고 경멸하게 여길 수도 있다. 남과 비교하는 습관은 사회적 관계에서 유익을 주지 못한다. 남을 업신여기는 교만, 나보다 월등한 상대를 만나면 자신감을 잃고 주눅이 드는 낭패를 경험한다. 싸우지도 않고, 패하는 지름길이 바로 나와 남의 비교습관이다. 이기려면, 남을 볼 것이 아니다. 남을 통해 나를 보는 습관을 길러야한다.
나는 신문읽기 습관을 가지고 있다. 조선일보를 1부 사고, 한겨레를 사거나 동아일보를 사거나 중앙일보를 산다. 신문은 곧 시대의 창문이며, 나를 비쳐보는 좋은 거울이다. 신문에는 정말로 읽을 거리가 많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나를 재발견한다. 나와 비교하는 남을 찾지 않고, 나를 닮은 사람들, 그리고 나와 차이가 있는 사람들의 생각들을 찾아 나선다. 신문읽기는 정보탐험과 같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탐험가가 정상에 깃발을 꼽듯, 나는 언제나 문장과 문맥의 정글을 지나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하루가 지나면 언제나 나는 신문을 오려서 신문모음 노트에 오려 붙인다. 그렇게 나의 정보는 조금씩 쌓여간다.
사람이 갖춰야할 많은 능력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능력이다. 언어능력은 흔히 외국어를 손에 꼽지만, 표현능력과 경청능력이 언어능력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 중에서 경청능력은 사람들이 쉽게 얻지 못하는 능력이다. 그 이유는 한국교육의 부작용 때문이다. 한국교육은 토론교육을 한다면서, 상대방의 말을 비판하는 것에 집중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상대를 이기는 언변술을 훈련한다. 상대가 무엇을 말하는지 그것을 깊게 듣지 않고, 상대의 말의 모순을 찾는 것에만 몰두한다. 초등학교때부터 이기는 토론학습을 하다보니, 언어능력에서 ‘귀의 경청감각’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귀와 입은 언어에서 매우 중요하다. 말하는 훈련만큼 듣는 훈련이 중요하다.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반드시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훈련을 하면,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간혹,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수긍할 수도 있다. 이것을 공감토론이라고 한다.
청소년들에게 내가 만약 교육멘토링을 한다면, 신문을 꼼꼼히 날마다 읽도록 권면하고 싶다. 더불어 친구들과 대화를 경청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3:1의 비율로 말하는 습관을 갖도록 조언하고 싶다. 상대가 3번 말하면, 그때 1번 말하는 훈련을 하면, 어느새 상대는 자신의 친구가 되어 있다. 들어주는 사람은 마치 나무와 같아서 새들이 날아와 가지에 깃든다. 친구가 많은 리더를 보면, 말하는 것보다 행동하고 들어주는 데 매우 익숙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기쓰기를 추천한다. 일기는 어떤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생각에 창조력을 더한다. 표현은 곧 날마다 생각의 엔진을 가동하는 것이다.
특정한 친구와 비슷한 주제로 날마다 대화를 하면, 거기에 코드가 맞춰져서 생각이 굳어버린다. 다양한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책을 통해서도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가족들과도 새로운 주제에 대해 깊은 의견을 나누며, 드라마에 대해서도 서로의 감동을 말하는 생활속 토론을 한다면, 언어감각은 키가 자라듯 금방 자랄 수 있다. 밥이 보약이란 말이 있듯이 언어훈련은 생활속에서 조금만 신경쓰면 된다. 결국 나와 남을 비교하기 보다는 남을 친구로 삼고 대화를 즐기는 공감훈련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친구는 결코 경쟁의 디딤돌이 아니다. 친구는 함께 걸어가는 삶의 동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