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교육에 있어서 초등학교 5학년, 6학년이 정말로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수학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에 그동안 경험을 되살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쉽고 재밌는 개념’을 정리해 책을 엮었다.
초반부에는 아이들의 공부습관 기르는 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맹자 엄니의 맹모단기(孟母斷機)가 내포한 현대적 의미에 대해서도 말했다. 쓰고 보니, 나의 어린 시절이 자꾸 생각이 난다.
고향이 시골이라서 좋은 교육 환경을 갖지 못했던 어린 시절, 그래도 나의 부모님은 자연을 벗삼아, 양심을 거울삼아 참으로 착하게 사셨던 것 같다. 부모님의 긍정적 심령이 나에게 든든한 과외 선생이 되어주었음을 고백해본다.
또한 나에게 창조주를 바라볼 수 있는 종교적 깨달음을 준 정명석 선생님께도 변함없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는 나의 영원한 인생 멘토이다.
모태(母胎)에서 잘 자란 아이는 지구 땅에 완전하게 태어난다. 그렇듯이 교육적 생명은 사회로 태어나기까지 ‘학교라는 양수’에서 자라는 것이다. 이때 영양결핍에 걸리는 아이는 발육하지 못해서 완전한 사회인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는 각 단계별로 전 단계는 다음 단계에 대해서 ‘양수’와 같다. 모태에서 지구로 생명이 태어나듯이, 초등학교의 모태를 거친 아이는 중학교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모태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이 바로 ‘초등학교 4~6학년’이다. 왜냐면, 이때 모든 지식의 50%를 배우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후반부 3년동안 아이가 좋은 부모를 만나서 공부습관의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게 되면, 그 아이는 지식의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게 되고, 훗날 대학교에 진학하면 맛있는 지식의 열매가 열리게 된다.
이 단원의 핵심은 “지식은 주입이 아니고, 습관에 달려있다”이다.
자녀가 크면,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지만, 중학교만 들어가면 학생들은 왜 비뚤어지는 길로 빠질까? 그것이 학교만의 문제인가? 학부모들은 ‘학교 시스템’의 부실공사탓을 하지만, 학교측 입장은 다르다. 자녀의 공부습관은 부모의 습관과 직결되어있다는 것이다.
누구 말이 맞을까? 누구 말이 맞는지 그 해답을 찾는 동안 자녀는 벌써 PC방으로 달려가서 게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임중독은 담배보다 무섭다. 한창 공부해야할 아이들이 왜 게임에 빠지고, 공부는 못 하는 것일까? 공부가 재밌는 아이들은 왜 그렇고, 재미가 없는 아이들은 왜 공부가 재미없을까? 누구 탓일까? 유전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자.
한국의 교육 과정은 총 12년이다. 아주 긴 세월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7살 때 학교라는 곳에 들어간 아이가 19살이면 대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성인식을 치르게 될 그 나이에 “재수(再修)”라니!! 재수없게!!
재수(再修)에서 수(修)는 ‘닦는다’는 뜻이다. 머리털 삼(彡)이 있듯이, 흐르는 냇물에 멱을 감던 모습이다. 머리를 감듯 머릿속에서 무지를 털어내고, 청결하게 닦는 것이 바로 수(修)의 깊은 뜻이다. 12년이나 머리를 감듯 공부로서 무지를 벗겨냈으면 됐지, 또 재수??
재수를 한다고 별반 달라질 게 있을까? 11월, 12월은 수능끝나서 갈팡질팡, 연말이라서 뒤숭생숭, 1월 2월은 신년이라 들떠서 훌라당, 3월 4월이면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서 맘이 안 잡히고, 5월 한달 공부하면 무더위가 찾아와서 땀 흘리다가 졸다가… 일어나면 또 수능이다. 재수(再修)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도대체 근본 문제는 무엇일까?
초등학교때 잘못 한 것이다. 이 사실은 모든 학생들의 공통분모이고, 최대공약수이다. 간혹 돌연변이처럼 초등학교때 공부습관이 없던 학생이 갑자기 두각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대부분 초등학교때 공부습관이 된 학생이 공부의 승리자가 될 확률이 높다.
“내 아이는 초등학교때 공부 잘했어요.”
그 ‘잘함’의 기준이 무엇인지… 학원에서 성적이 좋다고 하니까… 그렇게 혹시 보냈던 것은 아닌지… 가만히 돌아봐야한다. 지금 4~6학년 자녀를 둔 부모는 이 부분을 심각하게 볼 필요가 있다. 공부습관은 다른 것이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인데, 학원에 학원비 주면서 방목을 한다고 해서 아이의 공부습관이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공부습관은 그 어머니와 직접적 상관이 있다. 부모가 책을 읽으면 아이도 책을 읽는다는 말이 있다. 사실이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부모들은 아이 앞에서 책을 읽고, 신문을 읽는 행동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교육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매우 타당한 지적이다. 좋은 충고는 그것을 실천할 때 효능이 있다. 충고가 보약이면, 실천은 곧 보약을 복용한 것과 같다.
4~6학년 때는 그래도 어머니가 말을 하면 아이가 그 말을 듣는다. 그러나 이 때를 놓치면, 자녀들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는다. 흔히 사춘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자녀들은 방황하기 십상이고, 샛길로 빠지다가 인생이라는 위대한 건축물에 치명적 하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아차’ 하는 순간에 ‘삐꺽’한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가 자녀들을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이것 해라, 저것 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신에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지식 즉, 가치관을 형성시켜줄 수는 있다. 그것이다. 아이에게 아이의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는 시기, 그것이 바로 4~6학년 때이다. 이때 책을 엄청 읽는 아이는 봄에 거름을 한 나무와 같아서 교육의 가을철인 고등학교 때 풍성한 열매가 나타난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은 12년의 지식이 대전환을 맞이하는단계다. 사실 초등학교 때 지식은 중학교 3년동안 반복되고, 또 고등학교때 반복된다. 초등학교때 모든 지식의 50%를 배우고, 중학교는 그 50%에서 20%를 더 배우고, 고등학교는 90%까지 배우고, 나머지 10%는 대학교때 배운다.
그래서 초등학교때 지식을 깊게 배운 아이들은 중학교때 성적이 좋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서 초등학교때 성적이 좋은 것이 좋다. 그저 학원에 다녀서 시험에 급급하게 성적을 맞추는 것은 아이에게 불규칙적 식사 습관을 심어주는 것과도 같다.
우선 먹기에 곶감이 달듯 학원비 주고서 학원에 보내는 것이 어머니 입장에서 ‘위로’ 차원으로 스스로 좋은 것이지, 실제 자녀의 교육에 있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지식을 습득할 공부의 내장이 튼튼하지 못한데, 아무리 실력있는 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뭐하겠는가? 산삼도 “설사(泄瀉)”하면 꽝인 것이다.
생각해보라. 식당에서 사먹는 밥맛이 고향 어머니가 해주는 정성맛과 같겠는가? 초등학교 4~6학년까지 자녀에게 가장 훌륭한 과외 선생은 사실 ‘어머니’다. 수학이 어렵든, 과학이 어렵든, 국어가 어렵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 풀고, 답안지로 채점만 하면 되는데, 뭐가 어려운가?
어머니가 자녀를 과외 교육한다는 것은 ‘지식’의 교육이 아니라, ‘습관’에 대한 교육이다. 즉, 시간 교육이다. 어머니의 시간으로 자녀의 시간을 묶어서 ‘습관’을 과외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부습관의 깊은 비밀이다. 공부습관은 결코 아이 스스로 길러지지 않는다.
문제집을 사서 날마다 정해진 분량대로 문제를 푸는 것을 3년동안 해오는 자녀와 어머니가 있다면, 그 자녀는 교육적 층면에서 최고로 우수한 어머니를 둔 것이다. 그러한 어머니를 두기도 힘들다. 그 자녀는 진정 감사해야한다. 어머니의 희생이 없다면 자녀의 교육은 바르게 자라기가 힘들다.
사람들은 누구나 놀고 싶은 법이다. 놀고 싶은 잡초가 머릿속에서 삐쭉삐쭉 자랄 때, 그것을 이발하고 잘라주는 것이 바로 어머니라는 교육의 정원사가 해야할 일이다. 이것을 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자녀는 공부습관이 전혀 없고 잡풀이 찌든 머리통을 가지고 중학교에 들어가면, 성적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공부해라”고 야단치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다. “공부하자”면서 어머니가 자녀와 함께 희생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부모가 안하면서 자녀에게 그것을 원한다면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요청인 셈이다. 부모가 해야 자녀도 한다. 부모가 변해야 자녀도 변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