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도덕시간에 자유(自由)가 지나치면 방종(放縱)이 되고, 죄를 범하면 자유가 제한되어 구속(拘束)된다고 배웠다. 자유(自由)는 스스로 말미암아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고, 방종은 스스로 행함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이며, 구속은 스스로 하는 것에 제한과 한계를 주는 것이다. 자유의 본질은 무엇인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그 의미의 본질을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다. 사람은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해도,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제너시스 차량을 나는 사고싶다. 경제적 여건이 한계에 놓여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 누가 방해한 것이 아닌데, 내가 제너시스를 가지고 싶다고 해서 가지면, 절도범이 된다. 자유(自由)의 구속이다.
신라시대 골품제(骨品制)가 사라졌다고 해도, 경제적 골품제가 자본주의로 존재한다. 상속제도는 금수저과 흙수저를 엄격히 구분한다. 모든 물건은 그 가격이 있어서, 돈이 있는 부자와 돈이 없는 가난한 자는 자유에 계급이 존재한다. 골품제는 계급에 따라 옷의 색깔을 구분했듯, 자본주의는 돈의 유무로 차량과 주택을 구분한다. 이것이 자유의 본질이다.
성경은 이러한 자유에 대해 “하라”와 ‘하지 마라“로 구분한다. 자유는 곧 법의 울타리속에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자유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울타리안에서 허락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그 울타리가 무엇인지 깨닫는 것, 그것이 자유의 시작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먹을 수 있는 열매와 먹을 수 없는 열매를 엄격히 구분했다.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이 먹을 수 있는 풀을 약초로, 먹을 수 없는 풀을 독풀로 구분하듯, 그렇게 구분했다. 그런데 먹지 말라고 한 그 선악과를 따먹고 하와와 아담은 죽은 것이다. 선악과의 비유적 본질은 뒤로 하고, 하라는 것을 하면 그것이 자유다. 하지 말라는 것을 안하면 그것도 자유다. 그러나, 하지 말라는 것을 하거나, 하라는 것을 안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은 영과 혼과 육이 존재한다. 영과 혼을 합쳐서 영혼이라고 한다. 영혼은 물질이 아니다. 육은 물질이다. 사람은 크게 구분하면 육체와 영혼이다. 육체는 법의 울타리에 속하고, 영혼은 양심과 진리의 울타리에 속한다. 각각 울타리를 벗어나면 범죄(犯罪)를 한 것이 되어서, 탈선한 열차가 멈추듯 울타리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기능이 정지된다. 이것이 죽음이며, 구속이다.
‘육체가 법의 울타리에 속한다’고 했을 때, ‘법의 울타리’는 1개가 아니다. 법률이 수천개, 수만개이듯, 모든 분야마다 각각 다르다. 이와 관련해 기독교복음선교회에서 내가 배운 성경교육 프로그램은 ‘7단계 법칙’이다. 모든 존재는 법칙으로 존재하며, 법칙을 벗어나면 그것을 죽음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가령, 육체는 생명력이 중요하다. 생명력이 있어야 활동한다. 생명력은 곧 건강이다. 건강하려면 건강관리를 잘해야한다. 요즘 미세먼지는 호흡기를 통해 사람의 건강을 해친다. 물도 건강에 필수조건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먹고 싶은 것을 무작정 먹고, 담배와 술을 마시면서 술중독에 빠지면 건강은 점점점 사라진다. 건강 상식이다.
이와 같이 영혼도 건강하려면 영적 건강관리를 잘 해야한다. 영적 건강관리를 잘 하려면 우선 영혼의 존재와 진리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하며, 자신의 영혼이 어떠한 상태인지, 영혼의 최첨단 전문가인 하나님께 진단을 받아야한다. 그것이 예배이며, 기도이며, 찬양이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싸우면 법원에 간다. 마음이 아프고 영혼이 괴로우면 교회에 가는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한 성경말씀이 자유의 본질을 명확히 말해준다. 자유는 곧 진리안에서 진정한 자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