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드라마 비평]=사람의 감정은 보이질 않는다. 표정으로 나타난다. 드라마를 통해서 감정이 어떻게 반응하고, 감정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면서, 사람의 말과 환경이 어떻게 연출되는지 상세하게 알 수가 있다. 나의 아저씨 14회에서 절정을 이룬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저속하거나 천박할 수도 있지만,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좋아하는 감정은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천박함과 존경은 전혀 다르다.
이지안이 박동훈 부장에게 좋은 감정을 갖는 것, 그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상대를 지키면서, 선을 넘지 않는 것, 아름다운 감정의 보물임에 틀림없다.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좋은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모두가 살인자라고 손가락질할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심으로 지켜준 단 한사람, 그 사람의 진심을 알았는데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가? 도청장치를 통해 알게 된 상대의 진심이 곧 이지안의 마음을 바꾼 것이다. 이지안은 참으로 안타까운 청소년기를 보냈으나, 진심으로 자신을 아껴주는 직장 상사를 통해서 새롭게 태어났다.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건가?”
“그래!! 할머니 돌아가시면, 전화해!! 꼭 전화해!!”
어렵게 전화를 하면서, 마음을 전한다. 이지안은 마지막까지 박동훈 부장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걸었다. 자신의 과거가 들킬까봐, 노심초사 불안에 떨며 숨어서 살았던 연약한 새같은 이지안에게 ‘나의 아저씨’ 박동훈 부장은 과거를 알고도 덮어준 유일한 인물이어서 그렇다. 아버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박동훈 부장은 결국 상무가 되었다. 모두가 축하하는 자리에 이지안만 없다. 쫓기는 신세가 되어서 그렇다. 결국 도청장치까지 들통났다. 이지안의 핸드폰 번호까지 찍혔다. 모든 연결고리가 노출된 것이다.
박동훈 부장은 비로소 알았다. 왜 이지안이 순간순간 자신앞에 나타나고, 자신의 속마음을 알았는지,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가 이지안 앞에서는 훤히 보였던 것인지, 도청장치였다.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남는다. 왜 그랬던 것인가? 도청장치로 감시했던 모든 내용들이 왜 이렇게 흐른 것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박동훈 상무는 결국 상무 집무실에서 이지안이 선물해준 슬리퍼를 꺼내 신었다. 모든 내막을 알게 된 이후에, 이제 어떻게 수습하고, 어떻게 매듭을 짓고, 이제 모든 것을 풀어야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파견직 직원 한명으로 끝낼 일이 아닌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 문제라서 그렇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서 왜 이지안은 자신의 편이 되어준 것인가? 게다가 그렇게 도청장치를 한 것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가? 모든 것이 헝클어졌다. 아내의 도덕적 문제도 어떻게 마침표를 찍어야할지, 그것도 풀 수가 없는데,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다. 마치 절에 들어가서 벽을 쳐다보며 도를 닦는 그 친구처럼, 잡념이 가로 막았다.
도청을 아름다운 연결로 비유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임에 틀림없다. 불법은 불법일 뿐이다. 도청을 통해 감정이 교감하면서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