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성경의 신약은 인류문명의 초석이다. 동방박사의 갑작스런 방문은 2가지 의미가 있다. 불청객처럼 찾아온 외부인으로 말미암아 비밀리에 성장하는 예수님께 큰 위험이 발생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세계적인 인물을 태어나게 하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잘 되었다면, 예수님이 그렇게 피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악한 헤롯의 권력욕 때문에 평화의 왕이 죽음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마태복음 2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요셉은 꿈의 지시하심을 받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했고, 꿈의 지시하심을 받고 급하게 피난길에 올랐다. 이런 경우가 성경 창세기 야곱의 사건에서도 등장하고, 요셉때도 등장한다. 야곱의 경우, 어머니 리브가의 지시를 받고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받았다가 피난길에 올랐다. 얼마나 속으로 원망했을까, 그러나 그것이 축복의 길이었다. 또한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지시를 받고 형들에게 점심을 가져다주다가 인신매매로 팔렸다. 얼마나 원망을 했을까? 그러나 그 길이 해외유학의 길이 되었고, 훗날 야곱의 가족들도 요셉처럼 이집트에 거주하게 되었다. 사람의 일은 하나님이 인도하심으로 그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도 마찬가지다. 요셉은 늙은 나이에 젊은 아내를 맞이해서, 자식을 많이 두었다. 그래서 성경 신약 초반부에만 나오고 후반부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 요셉이 했던 엄청난 일은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함으로 남편없이 자식을 낳는 수모를 당하지 않게 한 것이고, 헤롯의 유아 대학살에서 급하게 피난함으로 목숨을 구한 것이다. 구세주(救世主)라고 하더라도 성장하기 전에는 자신의 목숨조차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메달렸을 때, “그가 다른 사람은 구원하면서 정작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가”라고 사람들이 조롱하기도 했다. 하물며, 아기 예수랴!! 힘이 없을 때는 힘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요셉도 정치적 정보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동방박사가 선물을 들고 와서 아기 예수의 미래를 예언하고 축하했고, 그날밤 꿈을 꿨는데 거의 흉몽(凶夢)처럼 도망가라는 천사의 지시를 받고 짐을 꾸렸던 것이다. 그렇게 아기 예수는 힘들게 유아시절을 보냈다. 큰 인물이 태어날 때는 산고(産苦)의 고통처럼 죽음의 위험이 도사린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큰 용이 ‘여자의 남자’가 태어나기를 막는다고 했다. 모세때도 유아 대학살이 있었고, 대한민국에서도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유아 대학살과 같은 산맥끊는 일이 자행됐다. 일본놈들이 순천, 대전, 서울 등의 산맥마다 철근을 꽂아서 큰 인물이 태어나는 것을 막았다. 또한, 1950년 북한군의 침략으로 얼마나 많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었는가?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러한 전쟁의 죽음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특별히 보호하심으로 생명을 구원받는다.
“꿈의 지시하심을 받고” 요셉은 그 꿈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았고, 급하게 피신했다. 이것이 정말로 큰 일이다. 어떤 지시를 받고, 그것이 무엇인지 얼른 깨닫고서 그대로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혜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면 효력이 없다. 지혜는 마치 접붙임과 같다. 어떤 지혜로운 방법이 영감처럼 떠올랐다면, 그 방법을 행위로 실천해야 결과가 나온다. 이것은 고염나무인 자신의 가지를 잘라내고, 지혜로운 감나무를 접붙여서 감나무를 여는 것과 같다. 고염나무가 감나무의 접을 받아드리지 않으면 열매가 없다. 반면 감나무의 가지를 접붙임으로 받아드린다면, 굵은 감이 열린다. 지혜로운 방법은 곧 접붙임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요셉은 정말로 중요한 사건을 결정할 때, 꿈의 지시하심으로 축복을 받았다. 결혼도 결국 하나님께 묻고 행하는 것이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