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의사소통은 상황에 의존한다. 나무 줄기는 뿌리에 연결되고, 가지는 줄기에 연결되고, 과일은 가지 끝에 메달려 있다. 말은 혀끝에서 만들어지고, 생각이 언어를 창조한다. 그처럼 의사소통은 반드시 그 상황에 연결되어 있다.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사람과 사람이 오해가 발생하고, 오해는 적대관계로 대치하게 된다.
가령, 북한의 남북평화 회담이 있었다. 이후 모든 상황은 급격히 좋아졌다. 비핵화를 위해 북한, 남한, 중국, 미국, 국제사회가 각각 서로다른 동상이몽을 가지고 있다. 어느 쪽이라도 자신의 입장에서 기자회견을 하면, 그 기자회견은 그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그것을 해석하게 된다. 여기서 2가지 의미가 파생되는 것이다. 이것이 의사소통의 상황의존성이다. 그 상황에서 그러한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먼저 인지하고, 인정하고, 사건을 파악하면 모든 것이 쉽게 풀릴 수도 있다. 무수한 해석은 바람같은 것이다. 핵을 잡으려면, 줄기보다 그 뿌리를 봐야한다. 그것이 맥락을 잡는 의사소통인 것이다.
사람은 교회에서 말하는 내용, 직장에서 말하는 내용, 까페에서 말하는 내용이 각각 다르다. 달라야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상황과 주변 사람들에 따라서 사용하는 언어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장례식에 갈 때와 결혼식에 갈 때 그 입장과 상황이 전혀 다르듯 그러한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항상 물과 기름으로 엇갈리게 된다.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서 그것을 받아드리고, 인정하는 겸허함을 가져야하고, 상황을 파악하고서 그것을 직시하는 훈련을 해야한다. 이것이 의사소통의 상황의존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언어의 이런 성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면서, 슈퍼에 가서도 왜 존경을 하지 않느냐고 따지거나, 사람들과 괜한 시비(是非)를 걸면서, 혼자만의 세계에서 독불장군이 된다. 상대의 입장, 상대의 나이, 상대의 직업, 상대의 감정날씨, 상대의 기분, 상대의 성장배경 등등 모든 것이 연결되어서 그 순간 말이 나오는 것이다. 대화를 하는 그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상대는 그저 대화를 하는 것 같아도, 그 말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축적된 상태에서 나온 표현법인 거이다.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상대의 모든 것을 알아가려고 마음을 열어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의사소통의 첫걸음인 것이다. 그저 말 몇마디, 몇시간 섞는다고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