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내가 어제 월명동에 방문해서, 가이드 설명중에 크게 기억남은 말은 ‘관찰 고찰 통찰 성찰’이다. 가이드의 그 말은 곧 정명석 목사님의 멘토링을 함축한 표현일 것이다. 명철한 지혜의 잠언이다.
“큰 사람은 큰 책으로 배웁니다. 정명석 목사님은 만물의 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배웠고, 월명동을 중심으로 흐르는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고, 성경속에 흐르는 예언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물과 사건을 관찰하고, 그 관찰을 통해 고찰하고, 고찰을 통해 통찰하고, 통찰을 통해 성찰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 4단계는 곧 지식을 배움으로 깊게 연구해서 지혜를 얻는 단계입니다. 이것이 월명동 관람의 좋은 방법입니다.”
관찰(觀察)은 황새처럼 보는 것(觀)과 제사상을 살피는 것(察)이다. 상당히 조심하고, 주의깊게 보는 것이다. 觀은 황새 관(雚)과 볼 견(見)이다. 황새는 눈이 상당히 매섭다. 목이 긴 황새는 새들의 황제다. 왕들은 신하와 백성의 행동을 꿰뚤어 본다. 관찰(觀察)은 황새처럼 멀리, 깊게 보는 것이다. 찰(察)은 뚜껑(宀)과 제사(祭)가 합쳐졌다. 제사상의 뚜껑을 덮어둔 모습이며, 제사상을 차려놓은 사당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몸가짐, 마음가짐 정말로 살펴야한다. 관찰(觀察)은 곧 그러한 것이다.
고찰(考察)은 깊은 생각으로 살피는 것이다. 고(考)는 생각할 고(考)인데,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다. 늙을 노(老)와 구부릴 교(丂)가 합쳐졌다. 노인들은 정말로 생각을 깊게 한다. 늙었다는 것은 오래 살았다는 것이다. 생각의 깊이와 시간을 그렇게 오랫동안 하는 것, 그것이 고(考)다.
통찰(通察)은 통하는 관찰이다. 사물과 사건을 관찰하면서, 자신과 통하는 것이다. 통(通)은 슬리퍼 착(辶)과 울타리 용(甬)이 합쳐졌다. 울타리를 돌아서 만들어진 골목길이 通이다. 通은 길로 서로 연결된 것이다. 길은 곧 연결이다. 사물과 자신이 연결되는 것이 곧 통찰(通察)이다.
성찰(省察)은 곧 순례(巡禮)의 단계이며, 예배(禮拜)와 같다. 사물을 보면서 자신을 보는 단계가 곧 성찰(省察)이다. 이 단계는 사물이 곧 거울이 된다. 통찰로 길이 되면, 보는 자가 사물속에 들어가서 자신이 보이는 단계가 바로 ‘성찰’(省察)이다. 성(省)은 작을 소(少)와 눈 목(目)이 합쳐졌다. 아주 작게 눈을 뜨고 본다는 것, 작은 부분을 세밀하게 보는 것, 그것이 성(省)이다. 현미경처럼 세밀한 단계로 보는 것이 바로 성(省)이다. 반성(反省)은 어떤 사건을 되돌려 세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성찰(省察)은 사물을 쪼개서 분자로, 원자로 나누듯 세밀하게 모든 것을 분석하면서, 자신을 발견하는 단계이다.